좋은 시 모음

2월에 관한 시 모음

뉴우맨 2023. 2. 26. 04:52


2월에 관한 시모음 25)



이월이         /自我 진태원



다리 짧은 2월이

찬 겨울 길을 외로이 홀로 걸어서

손끝 놓지 않고 봄을 데리고 오는 2월이

시간이 걸려도 노록(勞碌)한 종종걸음

디딘 자국마다 흰 설 녹이며 포근히 밟는다



마중 나간 길목에 얼음아

아무리 얼어봐라. 이렇게 나

2월이 오는 길, 미끄러지지 않게

정 하나 들고 깨뜨리려니 시린 손이 얼겠는가



땀내가 배어들며 추위에 견디어 지친 다리 털썩

2월이 내 곁에 와닿을 때 내 남은 눈물 쏟으며

손이 발이 되고 발이 손이 되어 서로

'고생했다' 사랑스레 포옥 얼싸안으리.





2월의 한파에      /김경철



겨울의 시작에

연신 흔들던

동장군의 꼬리



불어오는 찬 바람에

유유히 흐르던

물을 얼린다



끝인가 싶던

2월의 한파에



춤을 추듯

온몸이 떨리지만



어디선가

태어난 생명에



향긋함을 내뿜는

3월의 봄을 기다린다





2월             /임우성



뭔 놈의 달이

스므 여드레 밖에 되지 않아

뭔가를 좀 해 볼려고

그럴려고 그러는데

달이 다 가버리고 말았다



가당찮은 핑계

터무니없는 구실로

속절없이 보낸

또 한 달을 변명하고

책꽂이에 두고 눈길만 스쳤던

시집에 쌓인 먼지를 털었다



맹물같은 시 두어 편을 읽고

노트북을 열었다

단어 하나가 바위처럼 가슴을 짓눌렀다

삼월



예기치 않은 어려운 손님마냥

불쑥 다가와 버티고 선

이 삼월을 나는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2월 오면             /김용락



누님, 2월 오면

붉은 산찔레 열매가

흩뿌리는 싸락눈 속에서 더 붉게 웁니다



외로움이겠지요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야윈 어깨 흔들며

개울가 버들개지 혼자 피어납니다



누님, 서울 누님

2월이 오면

깡깡한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이

더 따뜻하듯이



외로움에 젖은 사내의 마음 하나

조국 산천에

실핏줄같이 온통 번져

환한 꽃 하나 피워 올립니다





2월에는          /신성호



씨앗을 심자

희망의 씨앗을 심자



따뜻한 햇살과

신선한 바람과 물도 주자



인내의 덮개를 씌워

날마다 시간마다 정성을 주자



소망의 새싹이 나고

행복의 열매가 열릴 때까지



참고 견디며

그리고 기다리자



2월에는





2월의 향기           /김해정



해를 넘어 달을 보고

숨이 차게 달려온 시간

겨울인 듯 봄인 듯

흘러가는 어느 순간 지점



계절의 덤이라는 숫자 앞에

마른풀 섶이 바스락바스락

지난해 묵은 무거움 훌훌 털어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많은 것을 보라고

숫자 몇 개를 살짝 빼놓는다



아! 가끔은 까먹고 빼먹는 게

좋을 때도 있구나

은둔한 감성의 단어 하나하나

꽃샘추위 뚫고 부푼 설렘 내려놓으며



키 작은 2월의 기쁨 속에

머지않아 달려올 봄의 향기

잠시라도 단꿈을 꿀 수 있으니....





2월 광화문 장독대         /이영지



하얀 의자가 놓인다

7000의 의자가 놓인다

하늘에서 내린다

하얀 의자에 앉은 먼지가 닦인다



폴폴폴 꽃송이 눈이 내린다

천사들이 하나둘 하얀 의자에 앉는다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하얀 모자

하얀 어깨

광화문 장독대 하얀 의자

볼록한 몸둥아리

소복소복 훈장을 달아준다

하늘나라 장독대

하늘만큼의 커다란

꽃송이 함성의 눈이 내린다

하얀 나비가 나폴나폴

천사나팔 포롱포롱



아아아얀 장독대

나비가 나폴나폴 춤을 춘다

하얀 말씀이 춤을 춘다





2월                 /고은수



내뱉는 입김이 공기를 데운다



가파른 바위산을 조심스레 내려오는

하얀 염소처럼,



내려오다가 주위를 둘러보고 눈을 맑게

뜨는 두 발처럼,



내향적인 들판에 귀를 기울여본다



바람의 입은 훈풍을 노래할 것이다



나는 어딘가로 갈 생각이다

신성해지는 돌을 안고,





이월에 내리는 눈          /윤봉택



이월에 떠나는 눈

새이로 다시 눈은 나리는 데

얼마른 올래* 지나 먼 길 떠나온



섬 하나.



섬 그늘로 눈이 나려

세상 더 따사한 눈길

하얀 길을 따라

이승으로 나들이 온 그대 손 잡고

새벽이 올 때까지

바다를 건너면,



꿈꾸는 섬 너머 들리는

초승달 빛으로



돌담 넘어 쌓이는

꼬박이 그리움



항해일지 우로

이월의 눈이 다시 나리고 있어.



* 올래 : 골목의 제주어





2월            /목필균


바람이 분다

나직하게 들리는
휘파람 소리
굳어진 관절을 일으킨다

얼음새꽃
매화
산수유
눈 비비는 소리

톡톡
혈관을 뚫는
뿌리의 안간힘이
내게로 온다

실핏줄로 옮겨온
봄기운으로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햇살이 분주하다





2월의 이유       /강효수



2월의 마지막 날
비 내리네
대지에 촉을 박으며
재촉 재촉
비 내리네

2월이 도망가네
처벅 처벅
도망가네
누구랑 그랬다지
아마 그랬을 거야

2월이 짧은 이유는
도망가다 들켰다지
도망가다 들켜
버들강아지한테 덜컥
물렸다지

누구랑 도망가다
꼬리가 잘렸다지
그랬다지 분명
그랬을 거야
2월이 짧은 이유는





2월의 기도         /정심 김덕성



2월에는

새봄 맞는 우렁찬 환희의 심포니로

희망의 서곡이 울리게 하소서



좌절의 늪에서 벗어나

봄을 향하는 새 창조 역사 앞에

희망의 나래로 비상케 하소서



온화한 날씨로 잔설이 녹아

부드러운 훈풍이 마음에 스미어

마음 꽃이 피어나게 하소서



언 땅을 태양이 녹이듯

다툼이 있는 곳마다 따뜻이 녹여

화목으로 선을 이루게 하소서



봄볕에 짙어진 영혼으로

범사에 감사로 이웃과 사랑 나누는

희망찬 2월이 되게 하소서


매화(梅花) 에 관한 시모음 28)
고향에 관한 시모음 32)
고향에 관한 시모음 31)
겨울에 관한 시모음 51)
겨울에 관한 시모음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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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꽃에 관한 시모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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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노년 등에 관한 시모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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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 벌초에 관한 시모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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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관한 시모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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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에 관한 시모음 13)
봄에 관한 시모음 52)

내일도 나하고 놀래 / 김화연



심호흡하고 때려 봐

하늘 저편 초록의 둥지까지 날아오르도록

근심 묻은 빨 주 노 초 문신일랑 접어두고

가슴 깨질듯이 힘껏 때려봐

한참을 가도 돌아보지 마

어디로 가고 있나

어디로 떨어지고 있나

바람이 손짓하는 하늘을 날고 있어



때려야만 날아가는 나

때려야만 날개를 펴고

알바트로스 이글의 무리에서 놀 수 있어

풀어져 땅위에 뒹굴면

접힌 날개는 덩굴 속에서 허우적거려

잔디 위에 궤적을 그리며

땡그랑,

중심으로 안착하려면



벌타伐打없이 바람을 가르는

타격打擊의 비행은 끝마쳐야 해



그러니 어디에 떨어지든

만지면 흙먼지 털고

또 다시 일어서는 나



내일도 나하고 놀래?







만약이라는 말 / 김하연



만약이라는 말은

또 다른 지구

주머니에 넣기도 편하고

어느 곳에서나 먹을 수 있는 상비약 같은

만약이라는 말

자꾸 만지작거리면 영영 사라지기도 한다.

수만 개의 날개를 펴고 날아가기도 하고

검은 운석이 되어 떨어지기도 한다.

만약이라는 말 속에서는

집이 스스로 움직이고

꽃밭이 살아서 뒤란과 마당 끝을 옮겨 다닌다

움직임이 부산한 만약이라는 말

그 한마디에는 온통 변수들이 가득하다



그 만약을 누구나 갖고 산다.

돌파구처럼 막다른 골목처럼

한 숨 끝에 곁들이는 그 만약이라는 말

이웃사촌인 듯 살뜰하다가도

꼬리 자르고 떠나는 도마뱀 같은 말

만지면 집게발을 떼어버리고 떠나는 꽃게 같은 말

빈부의 격차도 없고 성차별도 없는

과거와 미래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두 글자



만약이라는 말 한마디로 늦은 밤까지 뒤척인다.

너무 멀리까지 가도 괜찮은

돌아오지 않으면 더 좋은 만약이라는 말

이 나무 저 나무 날아다니며

만약을 전하기 바쁜 새들과

뒤꼍 설익은 바람사이로 창문이 달리는 밤

머릿속에는 하루 동안 썼던

만약이라는 말이

우수수 머리맡에 떨어진다.

나는 베개를 만약이라는 말밑에 바친다.







보라색 / 김화연



두근두근 내 봄에

첫 제비꽃이 피었다

양지에 핀 제비꽃들은

내 옷장을 지키던 문지기 같다

꽃핀 자리는

꺾을 수도 열수도 없는

아득한 옷장이다



단벌로 보라의 계절을 보냈다

햇살과 어둠을 섞은 보라는 하얀 얼굴에

잘 어울렸고

보라와 함께

걷는 발길은

내 청춘의 보폭이었고

화관을 쓰고 걷던 출가의 길이었다.

지금도

보라색 옷을 입으면

두근두근 거리는 단추들

먼발치까지 다다르는

보라의 보폭들



보라가 늙으면

거뭇한 얼굴이 된다.

옷장에 걸린 옷들은 레이스가 늙어갔다

멍든 자국처럼 천천히 봄이 풀리고

꽃 진 자리

꺾을 수도 열수도 없는

아득한 옷장이다







봄의 곁 / 김화연



계절들에게는 곁이 있다

봄의 골목을 지나갈 때

여름의 나무들을 지나갈 때

뒷짐 지고 걷던 골목길 모퉁이 향이 난다면

그건 은은한 존재의 곁이라는 뜻이다

덜 깬 새발가지에 기대고 싶은 햇살

비가 오고 안개 끼고 허청대는 바람도

안녕하며 걸어가는 발걸음도

조심조심 꽃을 피하는 봄

봄꽃 꺾는 도둑에게도

어느 꽃에서 구입한 향수냐고 묻고 싶은

그런 향기가 난다

꽃 나들이를 놓친 핑계도

목련꽃 헹가래도

모든 향기와 냄새들은 곁을 갖고 있다

누군가의 곁으로 크고

누군가의 곁이 되는 동안

멀어지거나 멀어져온 언저리

이끼가 끼고 축축하다



초록 버드나무가 중얼거리는

아래에 한참 서있었다

그 말이 내 머리에 닿을 것 같았다.





분꽃 / 김화연



어둑한 저녁, 별들을 점등하려

성냥불처럼 분꽃이 핀다.

딸 부잣집 딸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던,

열평 남짓 마당

채송화 꽃에 마실 온 여름

붉은 맨드라미꽃에게 마당의 난기류를 전한다.



누가 들어올까

허름한 문을 열쇠로 잠근 날엔

번뜩이던 머릿속이 농한기에 접어든 듯

반나절동안이나 열쇠를 찾은 적 있다

혼잣말을 지껄이던 노인은

고욤나무에게 물어보고

탱자가시를 덮고 있는 나팔꽃에게

문 옆의 주변들에게 물어보았지만

푸른 잎들은 못들은 척 손사래를 쳤다

시집간 막내딸이 깨진 독에 심어놓은 분꽃

검게 탄 머릿속에

불의 씨앗이 톡톡 떨어진다.

도둑들은 씨앗은 뒤지지만

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해가 지면 노을에게 불씨를 얻어 불 켜는 분꽃

밤눈 어두운 노인의 귀가를

화륵 화륵 밝히고 있는 분꽃



저 화분 밑에

빈집의 문이 숨어 있다





꿈틀 / 김화연

애벌레가 꿈틀할 때
잠의 매듭이 풀렸다
다시 묶인다

한 자세로 견딘 꿈이
다른 자세로 방향을 바꿀 때
날개가 돋아날 자리인 듯
등 뒤가 간지럽다

오동나무는 관棺인 듯
또는 관官인 듯 고요하기만 한데
가잠의 영혼이 마침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돌아눕는
꿈틀

꿈의 틀이다
내가 잠시 휘청할 때
바람이 나뭇잎의 앞뒤를 골고루 맛볼 때
멍하니 잠겼던 생각이
화들짝 제자리로 돌아올 때
정신 줄 놓은 엄마의 사경을 열 때
그때가 꿈틀,
지구가 돌아눕는 때이다

꿈이 꿈의 공간을 넓히는 일
사실, 온몸을 비틀어
꿈틀, 할 때이다





[ 김화연 시인 약력 ]




* 2015년 시현실로 등단

* 시집: 내일도 나하고 놀래 . 소낙비. 단추들의체온

* 현재 단국대 평생교육원 시낭송과시창작 외래교수

* 판교 노인복지관 시낭송과시창작 강사

* 시낭송지도자 강사

고향에 관한 시모음 32)



고향            /고현영



고향땅에 들어서니

햇살도

구름도

바람도

그때 그 시절

옛 시절의 것이련가

살갑게, 정겹게

부둥켜 안고 반겨주니.





고향 길          /이풍호

재(嶺)를 넘어 십리길
내(川)를 건너 십리길
가다가다 쉬어가도
눈에 어리는
어머님 모습

향수가 눈물짓는
잊어버린
고향 길.





고 향            /유창섭

비정한 세월의 끝에
희망이라는 꼬리표하나 달아
그래도 기다려야 할꺼나
밤 지새는 날
아무도 말하지 않음과
멀리 모여 수근거림이
얼마나 큰 형벌인지
떠난 사람들 얼굴
줄지어
지난 모든 일
그렇게 의미 있을 줄 모르고 살아
새삼스럽게
겹겹이 춥게 느껴지는 하얀 밤

어디선가 먼 발걸음
개 짖는 소리
떠 오르는 곳
모두 버리고 떠나도
아무 말 없이
돌아오는 추운 사람
언제나 따스한 골짜기, 낮은 집 몇채
밤 새운 굴뚝 몇개
흰 연기 나즉히 퍼지는





내 고향 6월은      /박광호



청 보리밭에 꽃바람 불어

황금빛 물들이고

감자밭에 햇볕 내려

알알이 감자 영글며

마늘 장다리 멸치볶음

어머니 손맛 피어난다.



느티나무 우거져

단오절 그네놀이 그립고

흐르는 시냇물

뛰놀던 동산도

예나 다름없네



내 고향 6월은

짙은 녹향에

삶의 열정 피어나고

사랑의 웃음 피어나는

어머니 품속 같은 표상이다





고향생각           /민 영



여기서 북쪽으로 천리를 가면

검은 강물 한 줄기 소리 없이 흐르고

우뚝 우뚝 거친 산 솟아 있는 곳

그 산밑이 내 고향 마을이라네.



참솔 같던 젊은이들 총 맞아 죽고

꽃다운 홀어미들 지쳐 잠든 곳

불에 탄 집터마다 쑥대풀 서걱이고

도깨비불 밤이면 펄럭인다네.



잿더미에 흩어진 뼈 벌레 되어 우나니

예 살던 살붙이들 어디로 갔나?

내가 자라 길 떠난 뿌리의 고샅

이 세상 일 마치거든 돌아가려네.





고향에 가고 싶다        /나명욱



나의 고향은 서울이다

지금까지 서울을 떠나서는

한 번도 다른 곳에서는

살아본 기억이 없는



그래서인지 나는 늘

서울을 벗어난

초록 들판이 아른대고 갈매기 끼룩거리는

농촌이나 어촌을 꿈꾸어보고는 한다



아이들을 다 대학 보내고

자기들 갈 길을 찾아갔을 때쯤이면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고향 같은 고향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다



시냇물 흐르는 곳에서

어린 날을 생각하며 올챙이도 잡아보고

고추와 상추 고구마 감자 마늘 배추 무

작은 텃밭을 만들어 일구는



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그 날이지만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감흥이 새롭다

하루라도 빨리 그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죽어도 살아도 그 곳에서 살고 묻히는 곳





마음의 고향        /고명



무등에 노을이 내리면

중머리재 억새밭이 그대로 저녁바다가 된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억새꽃들이

까치놀 파도를 일으키고

둥우리를 찾지 못한 물새들이

언뜻언뜻 억새바람 사이를 날으며

하룻밤 쉴 곳을 찾는다

쉬어가라 한 잠 푹 자고가라는 듯이

어둠을 다 품어 스스로 어둠의

집이 되는 바다

언제라도 돌아오라고 누구라 없이

제 낡은 무르팍을 내어주는 바다

그 어느 세월의 벼랑에서 해지는 바다를 보았는가

쉬어가라 쉬어가라며

나도 한 마리 물새가 되어

석양빛 그 바다로 날아간다





고향의 목소리         /이원문



세월 따라 가버린 고향의 목소리

지워진 고향의 소리 다시 듣는다

가축과 함께 했던 우리의 그 시절

그 가축 누가 어떻게 불렀나



텃밭 채소 망치는 집 나간 나들이 닭

저녁 모이 주느라 달걀 꿈에 부르는 소리

할머니 모이 통 들고 고~고~고~고~ 불렀고

보이지 않는 문간의 개 월이 월이라 불렀다



논 밭 갈이 쟁기질에 소 모는 소리

어서 빨리 일 끝내고 집에 들어가자

이려 이려 높고 낮은 아버지의 목소리였고

안 보이는 송아지는 네어미 네어미로 불러 어미 품에 안겨 주었다



돼지는 무어라 어떻게 불렀을까

우리 안에 갇혔으니 그릇 소리를 들려 주었고

끈 매어놓은 염소는 제 울음 흉내로 불러 주었다

밤 손님의 고양이 방 안으로 들어오라 나비야 나비야



우마차 말마차 꾀 많은 말 모는 소리

고집에 아집 트집 잘못해도 잘한다

달래고 구스르며 오라 ~ 오라 ~ 하며 토닥였고

사람은 화가난 할머니가 누나를 언년이라 목이 터져라 불렀다





고향 방문      /정재영(小石)  

예 옛적
일 잔치 끊이지 않던
고향집의 몸체나

운동회날
시끄러운 호루라기 속에
어머니 계시던
텅 빈 구석의 운동장도

머리 쓰다듬어 주시며
전근 가시던 선생님의
간이역 화단의
코스모스 손길 따라서

먼 하늘로
모두 떠나셨나

모두가
기억처럼 작아진
소인국의 궁궐들.





고향의 여름 냇가     /노정혜



푸른 물결 일렁이는
그리운 고향의 냇가
물가에 수양버들
바람에 흔들리고

아이들의 물장구치는 모습
해가 뜨면 반짝이는 모래밭
물놀이 즐거워
추워지면 달 구워진 바위에
웅기 종기 모여
해지는 것도 잊었던 그때 그 시절
물놀이로 행복했던 고향 냇가

그립구나
고향의 물놀이
밤이면 옥수수에 감자
오손도손
정을 나누던 고향

모깃불 피워 밤을 새우던 고향
자고 나면 모기에 물린 자국
아픔도 그리움이 돼
고향이 그리워진다

그때 그 모습
고향의 여름 냇과





고향           /김종삼



예수는 어떻게 살아갔으며

어떻게 죽었을까

죽을 때엔 뭐라고 하였을까



흘러가는 요단의 물결과

하늘나라가 그의 고향이었을까 철따라

옮아다니는 고운 소릴 내릴 줄 아는

새들이었을까

저물어가는 잔잔한 물결이었을까





고향 1          /김용화1



우리 동네

시집 온 이쁜 새댁들은

물을 긷다 풋살구 하나씩 몰래 따먹고

애기를 뱄다

처녀들은 달밤에

살구나무 밑에서 옷고름을 풀고

집을 나갔다

살구나무 올라가 가슴 죄며

한참을 찾아봐도 온통 푸르름뿐

그제야 얼굴을 내밀던

살구

살구 하나 따 먹고

늑대할배한테 코빠지게 혼났다

네놈들, 불알을 따먹을 테다

잠결에도 겁이 나

가랑이에 손을 넣고 있으면

나뭇잎 사이로 무수히 떠오르던 살구가

꼭 그것 같다고 생각되었다





고 향 생 각       /박인혜



주룩주룩....

창밖의 빗소리,



그 소리

하나하나에

추억이 담겨있어



소리소리

순간마다

고향생각 절로나니



고향아 !

내 앞에 와 있니?



창문 열면

내 가슴

저려만 오는구나....





고향 풍경          /명위식



아침 동산 위로 왈칵 토해 놓는

붉은 해

눈부시도록 쏟아지는 은빛 햇살

뜰 안에 발알갛게 피어나는 칸나꽃

노란 금잔화

알몸을 부끄러이 드러내고

주렁주렁 탐스런 감 열매

해맑은 이슬 머금고 번뜩일 때

밤나무 밑에선 아이들 재잘거리며

갈풀에 숨어 있는 알밤을 줍는다



병풍처럼 둘린 산허리

아스라이 뿌우연 안개구름

여인의 치맛자락처럼 나풀거리고

들녘에 펼쳐진 풍요로운 황금들판

산 계곡을 넘나들며 노래하는

새들의 청량한 음성

서서히 단풍드는 갈잎들을 바라본다



산계곡에서 불어오는 청정한 바람

가슴을 씻는 허수아비





마음의 고향       /장진순



긴긴 날 홀로

머나먼 하늘 바라보며

눈물짓던 곳

-

꽃은 피고 지고

내 젊음도 져 가고

-

그래도 잊지 못할

마음의 고향

-

날 위해 기도해 주던

지금은 없는 그대

-

그대가 보여준 순수한 사랑

내 평생 바쳐서 피우렵니다.





고향 생각          /윤덕명



붉게 물든 산자락 위의
저녁 노을을 보다가
꿈속에 그려보는 하늘
저 구름 아래 보이는 땅이
내 동심의 나라다

설대밭엔 굴뚝새 지저귀고
산발한 저녁 연기 자욱한
그리움의 고향
생각하면 할수록 손맛이 나는
어머니이 된장국 냄새가 난다

시래깃국을 맛깔나게 끓여 주시던 할머니
지금도 고향에서 날 반기며
청솔가리 불을 지피고 계실까





친정 가는 길         /김경숙

보물을 찾으러 가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마음은 벌써 우슬재를 넘어
친정 집 대문을 들어서고 있다
눈앞에 전개되는 정겨운 오월의 풍경
어줍은 표현으로 감당하기 벅차다

오전 11시 휴대폰이 울린다
오메 어디쯤 오고 있냐 머나 먼 길 힘들 텐데 어버이날 안 오면
어쩐다고 일부러 시간 내서 온다냐 나야 딸들 오니께 좋기는
하다마는 어쩌든지 운전조심하고 천천히 오니라

오후 12시 30분 전화를 받으신다
어디냐 겁나 시장하것다 니그들 오면 같이 묵을라고
밥 안 묵고 기다리고 있다 읍내 장날 가서 좋아한 것 사다
국도 끓이고 낙지 초 무침하고 게장도 만들어 놓고 맛나게
점심 준비 해 놨응께 조심해서 오니라 오냐 오냐
뚜 뚜 뚜......

동네 어귀 노송 한 그루,
버팀목에 의지한 채 흔들리며 서 있다
고향 들녘 보리밭, 눈 안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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