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모음

겨울에 관한 시모음

뉴우맨 2022. 12. 16. 23:29



한해를 보내는 송년 시모음<1> [송년 시]


한 해를 보내면서 / 조윤현



다난한 해를 보내고

희망찬 꿈이 그려지는

새해를 맞는 연말에

서산에 지는 해를 보며

영욕의 세월을 그린다.



지나온 해를 돌아보고

한 해를 또 보내면서

고희를 맞아야 하지만

지는 해가 거듭하면

미련에 남는 해는 아쉽고

새해가 또 기다려진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영겁의 세월을 보내면

무상한 인생 편력은

또 그렇게 그려지겠지.





송년 엽서 / 이해인



하늘에서

별똥별 한 개 떨어지듯

나뭇잎에 바람 한번 스쳐가듯



빨리 왔던 시간들은

빨리도 떠나가지요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간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어서 잊을 것은 잊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습니다



목숨까지도 떨어지기 전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눈길은 고요하게

마음은 뜨겁게

아름다운 삶을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충실히 살다보면



첫새벽의 기쁨이

새해에도 항상

우리 길을 밝혀 주겠지요





가는해 오는해 길목에서 / 경한규



또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아쉬움과 작은 안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립니다



봄? 같은 햇살에

땅끝이 다시 파릇파릇 되살아나

겨울이 겨울답지 않다고 투덜거리다가도

가던 길 멈추고 별빛 끌어내리면

이내

없는 이들의 가슴에 스미어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12월의 플렛홈에 들어서면 유난히

숫자 관념에 예민해집니다

이별의 연인처럼 22 23 24......31

자꾸만 달력에 시선을 빼앗깁니다

한 해 한 해

냉큼 나이만 꿀꺽 삼키는 것이

못내 죄스러운 탓이겠지요



하루 하루

감사의 마음과 한 줌의 겸손만 챙겼더라도

이보다는 훨씬

어깨가 가벼웠을텐데 말입니다



오는 해에는

이웃에게 건강과 함박웃음 한 바가지만

선물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우리는 누구나

홀로 떠있는 섬과 같습니다

못난 섬

멀리 내치지 않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송년의 노래 / 홍수희





먼저 떠나는 너는

알지 못하리



한 자리에

묵묵히 서서

보내야만 하는 이의

고독한 가슴을



바람에 잉잉대는

전신주처럼

흰 겨울을 온몸에

휘감고 서서



금방이라도

싸락눈이 내릴 것 같은

차가운 하늘일랑

온통 머리에 이고



또 다른

내일을 기다리고 섰는

송년의 밤이여,



시작은 언제나

비장(悲壯)하여라!





송년의 시 / 윤보영



이제 그만 훌훌 털고 보내주어야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하루를 매만지며

안타까운 기억 속에서 서성이고 있다



징검다리 아래 물처럼

세월은 태연하게 지나가는데

시간을 부정한 채 지난날만 되돌아보는 아쉬움



내일을 위해 모여든 어둠이 걷히고

아픔과 기쁨으로 수놓인 창살에 햇빛이 들면

사람들은 덕담을 전하면서 또 한 해를 열겠지



새해에는 멀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찾고

낯설게 다가서는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올해보다 더 부드러운 삶을 살아야겠다



산을 옮기고 강을 막지는 못하지만

하늘의 별을 보고 가슴 여는

아름다운 감정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삶의 이력서를 써보자 / 안윤주



한 해를 보내며

내 곁에 자랑하고픈 친구가 있는지

날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몇이나 있는지

나를 떠나간 친구는 없는지

떠났다면 왜, 그가 떠나 갔는지

거짓 없는 삶의 이력서를 써보자



새해에는

무엇을 향해 달릴 것인지

무엇을 얻기 위해 땀을 흘릴 것인지

꾸밈없는 속내를 떨어내어

알찬 새해 계획을 세워보자.



건강을 위하여

나의 키가 줄었는지 자랐는지

몸무게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바지사이즈가 줄었는지 늘었는지

흰 머리가 많은지 검은 머리가 많은지

따져보는 건강의 이력서를 써보자



냉정한 잣대로 존재가치의 지수를 점검해 보자

눈물이 나도 포기하지 말고

웃음이 나도 자만하지 말자

죽는 날까지 노력을 즐겨야 한다는 말

삶의 이력서 끝자리에 꼭 붙여놓고 살자.





세모(歲暮) / 박인걸

세모를 맞아도 거리는 붐비지 않는다.
코로나가 창궐한 도시는 비둘기들도 도망쳤다.
마스크 사이로 내비치는 경계의 눈빛들이
전선 병사의 눈초리보다 더 매섭다.
연일 튀어 나오는 확진 자 숫자와
앰뷸런스의 다급한 사이렌이 고막을 가를 때면
저승사자에게 쫓기는 심정이다.
달력의 마지막 숫자가 지워지던 날에는
한 해를 조용히 갈무리하며
다가오는 시간들을 설계도면에 그려 넣고
두 손을 모으고 예배당에 앉아
세 가지 소원을 적어 간절히 기도했었다.
보신각 종소리가 광화문 벌판에 퍼질 때면
Auld lang syne을 힘주어 부르며
지인과 어깨동무를 한 채
불빛 찬란한 도시를 휘젓던 시절도 있었다.
생애 처음 당하는 팬데믹 공포에
표범에 쫓기는 가젤이 되어
새해의 경계선을 두 발로 밟으면서도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없다.
2020년의 세모는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





세모에 / 권도중



새벽 졸린 출근길 지친 밤 퇴근길로

기댈 언덕 없이 지치도록 뛰었다

뜻으로 안 되는 인생 또 한 해가 저문다

그림자 짙은 골목 부산한 발걸음들

이 겨울 내리 울고 봄싹으로 돋을 수 있다면

필요한 돈만큼이나 간절한 소망이여

연하장도 카드도 내년에는 보낼게요

뿌리를 내리고픈 이 연대를 아십니까

내 사랑 무거운 만큼 진실로 힘을 주소서





세모(歲暮)의 창가에 서서 / 이해인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 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헛말을 많이 했던 빈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하지만 이제는 올해와

작별 인사를 해야 할 때



미운 정 고운 정 들었던

시간들 강물처럼 흘려보내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동그라미의 마음으로 살자.





세모(歲暮) / 정연복



어느새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새해 첫날을 맞이했던 게

엊그제 일만 같은데



올해도 정말이지 꿈같이

바람같이 흘러갔다.



뒤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간들



세모같이 앙칼진

마음으로 지낸 날들이 많다



좀더 너그럽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이제는 올해와

작별 인사를 해야 할 때



미운 정 고운 정 들었던

시간들 강물처럼 흘려보내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동그라미의 마음으로 살자.





세모(歲暮)의 창가에 서서 / 이해인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 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헛말을 많이 했던 빈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밤하늘에 펼쳐본 한해 / 김영래



하루종일 희뿌연 하늘로

시야를 가리던 날씨가

어둠이 깔리자

도시의 네온 불빛과

황사가 겹쳐 희로애락의

혼란 스럽던 사연을 덮어 버리고

고요함 으로 위장을 하며

아름다움으로 빤짝거린다



고속 도로를 달리듯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과

느리게 살려는 느낌의 마음과

줄다리기를 하던 시간도

12월 마지막 달이 되면

비로서 한해를 되돌아 보는

신호등처럼 멈춰서 상념에 잠긴다



만감이 교차하는 정리의 달이며

분주함을 추수려 보는 반성과

미로 같은 질곡의 의미를

밤하늘에 펼쳐놓고

찬 바람과 섞어 음미해보는데



방한복으로 무장한

눈매 깊숙이 외로움의

그늘이 서려 있는것 같아

편치않는 마음에

가슴이 싸~하게 저미어온다.





저무는 이 한 해에도 / 이해인



노을빛으로

저물어 가는

이 한 해에도

제가 아직 살아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음을 사랑하고,

기도하고, 감사할 수 있음을

들녘의 볏단처럼

엎디어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새로이

태양이 떠오르듯

오늘은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제 마음의 하늘에 환희

떠오르시는 주님



12월만 남아 있는

한 장의 달력에서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시간의 소리들은

쓸쓸하면서도

그립고 애틋한

여운을 남깁니다



아쉬움과

후회의 눈물 속에

초조하고 불안하게

서성이기 보다는

소중한 옛친구를

대하듯 담담하고

평화로운 미소로 떠나는

한 해와 악수하고 싶습니다



색동설빔처럼

곱고 화려했던

새해 첫날의 다짐과

결심들이 많은 부분

퇴색해 버렸음을 인정하며

부끄러운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청정한 삶을 지향하는

구도자이면서도

제 마음을 갈고 닦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허영과 교만과

욕심의 때가 낀

제 마음의 창문은

게을리 닦으면서

다른 이의 창문이

더럽다고 비난하며

가까이 가길 꺼려한

위선자였습니다



처음에 지녔던

진리에 대한 갈망과

사랑에 대한 열망은

기도의 밑거름이 부족해

타오르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침묵의

어둠 속에서

빛의 언어를

끌어내시는

생명의 주님



지난 한 해 동안

당신이 선물로 주신

가족, 친지, 이웃들에게

밝고 부드러운

생명의 말보다는

칙칙하고 거친 죽음의 말을

더 많이 건네고도

제때에 용서를 청하기보다

변명하는 일에 더욱 바빴습니다.



제가 말을 할 때 마다,

주님 제 안에 고요히 머무시어

해야 할 말과 안 해야 할 말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고

남에 관한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소서



참된 사랑만이

세상과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음을

당신의 삶 자체로

보여 주신 주님



제 일상의 강 기슭에

눈만 뜨면 조약돌처럼

널려 있는 사랑과 봉사의

기회들을 지나쳐 간

저의 나태함과 무관심을

용서하십시오



절절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암울한 시대탓을

남에게만 돌리고

자신은 의인인 양 착각하는

저의 오만함을 용서 하십시오



전적으로 투신하는

행동적인 사랑보다

앞뒤로 재어보는

관념적인 사랑에 빠져

상처받는 모험을

두려워했습니다.



사랑하는 방법도

극히 선택적이며

편협한 옹졸함을

버리지 못한 채로

보편적인 인류애를

잘도 부르짖었습니다.



여기에 다

나열하지 못한

저의 숨은 죄와 잘못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당신과 이웃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제 작은 머리로는 다 헤아릴 수 없고

제 작은 그릇엔

다 담을 수 없는

무한대이며

무한량의 주님



한 해 동안 걸어온

순례의 길 위에서

동행자가 되어 준

제 이웃들을 기억하며

사람의 고마움과

삶의 아름다움을

처음인 듯 새롭히는

소나무 빛

송년이 되게 하소서



저무는

이 한 해에도

솔잎처럼

푸르고 향기로운

희망의 노래가

제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와

희망의 새해로 이어지게 하소서 ~



아멘!





섣달 그믐이 가기 전에 / 허영자



섣달 그믐이 가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묵은 편지의 답장을 쓰고

빚진 이자까지 갚음을 해야 하리



아무리 돌아보아도 나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진 못하였으니

이른 아침 마당을 쓸 듯이

아픈 싸리비 자욱을 남겨야 하리



주름이 잡히는 세월의 이마

그 늙은 슬픔 위에

간호사의 소복 같은 흰눈은 내려라



섣달 그믐이 가기 전에

친구에게

올 한해도

친구가 제 곁에 있어

행복했습니다



잘 있지? 별일 없지?

평범하지만 진심 어린

안부를 물어오는 오래된 친구

그의 웃음과 눈물 속에

늘 함께 있음을 고마워합니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사랑보다 깊은 신뢰로

침묵 속에 잘 익어

감칠맛 나는 향기

그의 우정은 기도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음악입니다



친구의 건강을 지켜 주십시오

친구의 가족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12월 그리고 하얀 사랑의 기도 / 안성란



빠르다고

세월 흐름이 참 빠르다고

한숨을 쉬기보다

또 다른 세상에

바람 불어 좋은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나온 시간이 고통이었다면

소득이 있는 새날에

바람이 꽃을 피워서

우리네 삶에 새로운 희망을 뿌려 주는

12월 기도 안에서

지나온 날을 곱씹으며 활짝 웃을 수 있는

뜻깊은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차가운 어깨 토닥여 줄 수 있는

따듯한 손길로

힘내라고 열심히 살았으니

용기를 내라고

마주치는 눈길에

사랑이 피어났으면 참 좋겠습니다.



뒤 돌아본 시간

아쉬움을 남기지만

아쉬움 속에 한숨짓고

고개 숙인 아픔이 없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남은 시간

조급한 마음이기보다

앞날의 희망을 꿈을 꾸며

아직도 못다 한 말

남아 있는 예쁜 마음으로

하얀 사랑의 기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송년의 기도 / 정연복



한 해를 보내며

깨끗이 이별하게 하소서



내 안에 오래 살아

내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미움과 시기와 불평

쓸데없는 불안과 걱정



가슴속에서

말끔히 도려내게 하소서.



단 한번뿐인 나의

소중한 생을 갉아먹는



나쁜 생각들과 습관들을

한데 모아



활활 불태워 버리고

새 삶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송년의 강 / 백원기



세상 존재하는 것은

앞으로만 가지 뒤로 가지 않는다

애타게 붙잡아도

속절없는 세월은

욕심껏 앞으로 가다가

기어이 해를 넘고 만다



늦은 저녁 한숨일랑 걷어내고

내달리는 세월의 강에

흘려보낼 것은 보내고

씻을 것은 씻어야지



버려야 할 것들

잔뜩 껴안고 있으면 뭣하나

갈등 속에 몸부림치다가

송년의 강에 띄워 보내는

근심 걱정 후회 실망...

그 대신 너의 빈자리를

사랑과 감사로 채워줄게





송년에 즈음하면 / 유안진



송년에 즈음하면

도리 없이 인생이 느껴질 뿐입니다

지나온 일년이 한생애나 같아지고

울고 웃던 모두가

인생! 한마디로 느낌표일 뿐입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자꾸 작아질 뿐입니다

눈감기고 귀 닫히고 오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모퉁이 길 막돌멩이보다

초라한 본래의 내가 되고 맙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신이 느껴집니다

가장 초라해서 가장 고독한 가슴에는

마지막 낙조같이 출렁이는 감동으로

거룩하신 신의 이름이 절로 담겨집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갑자기 철이 들어 버립니다

일년치의 나이를 한꺼번에 다 먹어져

말소리는 나직나직 발걸음은 조심조심

저절로 철이 들어 늙을 수밖에 없습니다





송년의 시 / 김사랑



우리가 사는 세상

봄, 여름, 가을, 겨울

돌고 돌아 세월은 가고

우리가 사는 인생

그 세월을 따라

흘러 흘러만 가네



우리의 만남과 이별도

인연따라 시작되고

운명인 듯 끝인가 싶다 가고

다시 이어지는 사랑

이런 게 우리 연분인가요



그러니 그대여

너무 아파하지 말아요

지난 추억에 슬픔만 있다 해도

이제는 깨끗이 잊고

우리 다시 시작해봐요



지금은 절망할 때가 아니라

인내의 시간이 흐를 뿐

시련의 계절도 지나가겠죠

한 방울 눈물보다

환한 웃음이 필요해요





송년의 시 / 이명희



가진 것 없었지만

마음만은 풍요롭게 살았습니다

눈치가 없어 우둔한 척

유순하게 살았습니다



정제되지 못한 것들의 균열이

심하게 범람해도

뜨거운 입김 토해내며

견디고 살았습니다



내려놓지 못한 삶의 무게

수많은 시간의 결을 거처

무의식의 심연에 도달한

가벼움 얻기까지 무거웠던 그 세월



이젠 아름답게 곧추세우는

배려의 감성 맛보며

시린 무릎 쓸어주렵니다





섯달 그믐날 / 김남조



새해 와서 앉으라고

의자를 비워주고 떠나는

허리 아픈 섣달 그믐날을

당신이라 부르련다

제야의 고갯마루에서

당신이 가물가물 사라져가는 길

뚫어서 구멍내는 눈짓으로

나는 바라봐야겠어



세상은

새해맞이 흥분으로 출렁이는데

당신은 눈 침침, 귀도 멍멍하니

나와 잘 어울리는

내 사랑 어찌 아니겠는가



마지막이란

심오한 사상이다



누구라도 그의 생의

섣달 그믐날을 향해 달려가거늘

이야말로

평등의 완성이다



조금 남은 시간을

금처럼 귀하게 나누어주고

여윈 몸 훠이훠이 가고 있는 당신은

가장 정직한 청빈이다



하여 나는

가난한 예배를 바치노라.





연말결산 / 이외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지나간 날들은 망실되고

사랑한 증거도 남지 않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자폐증에 빠져 있는 겨울풍경

속으로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면

시간이 깊어진다

인생은 겨울밤

얼음 밑으로 소리 죽여

흐르는 강물이다





12월, 그대에게 / 이영균



나는 아직 그대를 못 보냅니다

흰 눈이 무릎을 덮는데 어찌 가렵니까

눈길에 절름거리며 사라지면

힁한 계절

나만 홀로 남겨지려니

서러워서 그대 못 보냅니다



옥빛 하늘아래 위풍당당하던 그대

그 화려했던 순간들 다 시들어

한잎 두잎 낙엽이 되었구려

천하의 절경과 풍요 다 무너져

간 곳이 없이

저렇듯 눈밭에 벌거숭이로 섰구려

곤하였던 길 하얗게 덮으며

지난 한 해 화려함 되새길 그대

나목이려니 생각하니

서러워서 나는 그대

정녕 못 보냅니다



흰 눈이 다 녹고

남겨진 가지에 새순 움 틔울 그날까지

찬란한 봄 기약하며 나는 기다릴 테요

가려거든 저 눈 다 녹아

싸리 빗질로 길 훤히 열리거든

꽃피는 봄날에나 사뿐히 가시구려





마지막 달력 / 진장춘



섣달 달력 한 장이

벽에 붙어 떨고 있다.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다.



달력이 한 장씩 떨어지면서

아이들은 자라고

철이 바뀌고

추억과 상처가 낙엽처럼 쌓인다.



마지막 달력이 떨어지면

나무는 나이테를 만들지만

인간의 이마엔 주름이 늘고

인간은 한해를 역사 속에 꽁꽁 묶어놓는다.



새 달력이 붙고

성장과 쇠퇴가 계속되고

그리하여 역사는 엮어진다.

크리스마스, 송년모임, 신년회

모임에 쫓겨 술에 취하다 보면

후회할 시간도 없이 훌쩍 세월은 넘어간다.



마지막 달력이 남으면

아이들은 들뜨고

어른들은 한숨짓는다.

그러면서 또 한해가 역사 속으로 떨어져 나간다.





송년회 / 목필균



후미진 골목 두 번 꺾어들면

허름한 돈암곱창집

지글대며 볶아지던 곱창에

넌 소주잔 기울이고

난 웃어주고

가끔 그렇게 안부를 묻던 우리



올해 기억 속에

너와 만남이 있었는지

말로는 잊지 않았다 하면서도

우린 잊고 있었나 보다

나라님도 어렵다는 살림살이

너무 힘겨워 잊었나 보다



12월 허리에 서서

무심했던 내가

무심했던 너를

손짓하며 부른다



둘이서

지폐 한 장이면 족한

그 집에서 일년 치 만남을

단번에 하자고





송년 편지 / 윤보영



무심코 뒤돌아 보니

어느새 이곳까지 와있다.



내일 모래가 새해!

그래도 한 해 동안

웃는 날이 더 많았기에

그런 나에게 감사를 전한다.



아쉽지만, 내 한 해를

아름다운 시간으로 마무리 해서

새해에게 전해 주련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덥다가 시원하고

눈까지 다시 내릴 새로운 한 해!



여건을 내게 맞추려 애쓰지 않고

오히려 환경에 적응해서

내가 주인 된 한 해를 만들어 가야겠다.



그러다 무심코 돌아봤을 때

오늘처럼, 내 멋진

한 해에게 감사를 전할 수 있게

가슴 가득 웃음꽃 활짝 피워

향기를 나누면서 살아야겠다.





송년 / 김규동



기러기떼는 무사히 도착했는지

아직 가고 있는지

아무도 없는 깊은 밤하늘에

형제들은 아직도 걷고 있는지

가고 있는지

별빛은 흘러 강이 되고 눈물이 되는데

날개는 밤을 견딜 만한지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버린

아름다운 꿈들은

정다운 추억 속에만 남아

불러보는 노래도 우리 것이 아닌데

시간은 우리 곁을 떠난다

누구들일까 가고오는 저 그림자는

과연 누구들일까

사랑한다는 약속인 것같이

믿어달라는 하소연과 같이

짓궂은 바람이

도시의 벽에 매어달리는데

휘적거리는 빈손 저으며

이 해가 저무는데

형제들은 무사히 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쓸쓸한 가슴들은 아직도 가고 있는지

허전한 길에

씁쓸한 뉘우침은 남아

안타까운 목마름의 불빛은 남아

스산하여라 화려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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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사랑 / 고정희



그 한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 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번의 이슥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겨울산에서 / 이해인



죽어서야

다시 사는 법을

여기 와서 배웁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모든 이와 헤어졌지만

모든 이를 다 새롭게 만난다고

하얗게 눈이 쌓인 겨울 산길에서

산새가 되어 불러보는

당신의 이름

눈 속에 노을 속에

사라지면서

다시 시작되는

나의 사랑이여.



<104>

겨울 날의 희망 / 박노해



따뜻한 사람이 좋다면

우리 겨울 마음을 가질 일이다



꽃 피는 얼굴이 좋다면

우리 겨울 침묵을 가질 일이다



빛나는 날들이 좋다면

우리 겨울 밤들을 가질 일이다



우리 희망은, 긴 겨울 추위에 얼면서

얼어붙은 심장에 뜨거운 피가 돌고

얼어붙은 뿌리에 푸른 불길이 살아나는 것



우리 겨울 마음을 가질 일이다

우리 겨울 희망을 품을 일이다





겨울의 회상(回想) / 오광수



당신이

손 내밀 때 왜 내가 잡질 못했던가?



뿌옇게 색이 바랜 아쉬움 들을

가슴속에다 억지로

밀어 넣어도

회상(回想)의 실핏줄을 타고 튕겨나와선



가끔씩 가끔씩 심장을 꼬집으며

덮어두었던 노래를 열고

가슴을 데우려고 하지만

굳어진 현실의 시간 앞에선

그저 아랫입술만 꼭꼭 씹습니다.



그때 하지 못했던 그 고백들은

이제는 탁한 숨소리가 되어

가슴이 아닌 세월에다 불을 붙이며

한 줄 나이테로

사라지는 오늘,



당신이 손내밀때 잡지 못했던 손은

지금 주머니에서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겨울 나무에게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십삼도

영하 이십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는 몸으로, 벋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오도 영상 십삼 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을 듣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초겨울 편지 / 김용택



앞산에

고운 잎 다 졌답니다

빈산을 그리며 저 강에

흰눈 내리겠지요

눈 내리기 전에

한번 보고 싶습니다





겨울 편지 / 김현태



그대가 짠 스웨터

잘 입고 있답니다.



입고, 벗을 때마다

정전기가 어찌나 심하던지

머리털까지 쭈뼛쭈뼛 곤두서곤 합니다.



그럴 때면 행복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매 순간 순간마다

뜨거운 그대 사랑이

내 몸에 흐르고 있음이

몸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겨울날 / 김광섭



마당에서 봄과 여름에 정든 얼굴들이

하나 하나 사라져갔다

그렇게 명성이 높던 오동잎도 다 떨어지고

저무는 가을 하늘에 人家의 정서를 품던

굴뚝 보얀 연기도

찬 바람에

그만 무색해졌다



그런 늦가을에 김장걱정을 하면서 집을 팔게 되어

다가오는 겨울이 더 외롭고 무서웠다

이삿짐을 따라 비탈길을 총총히 걸어

두만강을 건너는 이삿군처럼 회색 하늘 속으로

들어가 식솔들이 저녁상에 둘러앉으니

어머님 한분만 오시쟎아서 별안간 앞니가

무너진 듯 허전해서 눈둘 곳이 없었다

낯선 사람들이 축대에 검정 포장을 치고

초롱을 달고 가던 이튿날 목없는 아침이

달겨들어 영원한 이별인데

말 한마디 못하고 갈라진 어머니시다!



가신 뒤에 보니 세월 속에 묻혀 있은 형제들 공동의 부엌까지

무너져 낙엽들이 모일 데가 없어졌다

사람이 사는 것이 남의 피부를 안고 지내는 것이니

찬바람이 항상 인간과 더불어 있어서

사람이 과일 하나만큼 익기도 어려워

겨울바람에 휘몰리는 낙엽들이 더 많아진다

고난의 잔에 얼음을 녹이며 찾는 것은

그 슬픔이 아니요 겨울하늘에 푸른 빛을 띤 봄이다

그 봄을 바라고 겨울 안에서 뱅뱅 돌며

자리를 끌고 한치 한치 태양의 둘레를

지구와 같이 굴러가면서

눈과 얼음에 덮인 大地의 하루를 넘어서는 해질 무렵

천장에서 왕거미가 나리고

구석에서 귀또리가 어정어정 기어나온다

어느날 목없는 아침이 또 왈칵 달려들면

이런 친구들에게 눈짓 한번 못 하고

친구들의 손 한번 바로 잡지도 못하고 가리라





겨울 노래 / 오세영



산자락 덮고 잔들

산이겠느냐.

산 그늘 지고 산들

산이겠느냐.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아침마다 우짖던 산까치도

간 데 없고

저녁마다 문살 긁던 다람쥐도

온 데 없다.

길 끝나 산에 들어섰기로

그들은 또 어디 갔단 말이냐.

어제는 온종일 진눈깨비 뿌리더니

오늘은 하루 종일 내리는 폭설(暴雪)

빈 하늘 빈 가지엔

홍시 하나 떨 뿐인데

어제는 온종일 난(蘭)을 치고



오늘은 하루 종일 물소리를 들었다.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겨울사랑 /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 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그 겨울밤 / 안도현



한숨 자고

고구마 하나 깎아 먹고



한숨 자고

무 하나 더 깎아 먹고



더 먹을 게 없어지면

겨울밤은 하얗게 깊었지





겨울 바다 / 용혜원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파도가 휘몰아쳐 와

방파제를 깨물었다 놓았다

거센 파도의 아픈 비명에

시퍼렇게 멍든

바다를 보고 있으면

찬 바람이 매섭게 따귀를 때리고

가슴 시리게 뚫고 지나간다



갈매기들이 낯선 객을

환영이라도 하듯이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날개를 저으며 날고 있다



앞에 보이는 섬은

햇살이 끼어들 수 없는

산비탈에 하얗게 눈이 쌓였다



춥다! 춥다! 외칠수록

추운 선창가에서

항구를 떠나는 배는

시린 손짓 그리워

점점 멀어져 간다





겨울강 / 박남철



겨울강에 나아가

허옇게 얼어붙은 강물 위에

돌 하나를 던져 본다

쩡 쩡 쩡 쩡 쩡



강물은

쩡 쩡 쩡

돌의 튕기며, 쩡,

지가 무슨 바닥이나 된다는 듯이

쩡, 쩡, 쩡, 쩡, 쩡



강물은 쩡,



언젠가는 녹아 흐를 것들아, 쩡

봄이 오면 녹아 흐를 것들아, 쩡, 쩡

아예 되기도 전에 다 녹아 흐를 것들이

쩡,쩡, 쩡, 쩡, 쩡



겨울 강가에 나아가

허옇게 얼어붙은 강물 위에

얼어붙은 눈물을 핥으며

수도 없이 돌들을 던져 본다

이 추운 계절 다 지나서야 비로소 제

바닥에 닿을 돌들을

쩡 쩡 쩡 쩡 쩡 쩡 쩡





눈위에 쓰는 겨울시 / 류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106>

겨울 나목 / 양광모



알몸으로도

겨울 이겨내는

네 삶 눈부셔라



한 백년쯤이야

하늘 높이 쭉쭉

가지 뻗으며 살아야 한다고



헐벗은 가슴으로도

둥지 한두 개쯤

따뜻이 품으며 살아야 한다고



눈 내리면 눈꽃 피우며

봅이 아니라 겨울을

열렬히 살아야 한다고



너는 아무런 말 없이도

알몸으로 눈시울 뜨겁게 만든다.





겨울 / 조병화



침묵이다

침묵으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

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



바람은 지나가면서

적막한 노래를 부른다

듣는 사람도 없는 세월 위에

노래만 남아 쌓인다



남아 쌓인 노래 위에 눈이 내린다

내린 눈은, 기쁨과 슬픔

인간이 살다 간 자리를

하얗게 덮는다



덮은 눈 속에서

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 내어

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

봄을 준비한다

묵묵히...





겨울 그리스도 / 김남조



오늘은

눈덮인 산야를 거닐으시네

눈같이 흰 옷 입으시고

눈보다 더욱 흰

그 옛날 물위를 걸으시던

강줄기도 얼어

오늘은

수정의 빙판 걸으시네

울고 싶어라

머리칼도 곤두서는

율연(慄然)한 추위에



물과 땅의 모든 깊은 곳으로부터

보혈을 섞어 빚은

새 봄의 혈액을

한 없이 자아 올리시는

설일(雪日)의 주님





겨울 잠 / 박목월



천장 구멍에서 쥐가

얼굴을 쑥 내밀었다

두 개의 수염이 짝 뻗은

쪼붓하고 조그맣고 놀란 얼굴



쩡쩡 얼음이 어는 밤

얼음 위에 바싹바싹 달빛이

부서지는 밤



오오 추워라

아랫목 이불 속에 우리 아기가

고개를 푹 파묻었다

방에는

일렁일렁 흔들리는 그림자

아직도 아버지는

글을 쓰시는데

저절로 전등이 흔들리는 밤



천장 구석에 쥐가

쥐가 얼굴을 쑥 내밀었다

새까만 두 눈이 또록한

쪼봇하고 조그많고 놀란 얼굴



오오, 추워라

찡 울린 저 소리는

추위에 날무대가리가 터진게지

추위에 독이 갈라진 게지

새끼 있는 구멍으로

어서가 자거라





초겨울 / 도종환



올해도 갈참나무 잎 산비알에 우수수 떨어지고

올해도 꽃진 들에 억새풀 가을 겨울 흔들리고

올해도 살얼음 어는 강가 새들은 가고 없는데

구름 사이에 별이 뜨듯 나는 쓸쓸히 살아 있구나



<111>

겨울나그네 / 김재진



비오는 밤 편지를 쓴다.

키보드 두드리는 전자 우편 아닌

만년필로 써나가는 고전적인 노동,

노동하듯 나는 네게

힘들여

사랑한다는 한 마디 하고 싶다.

사랑한다.

잘 못 걸려온 전화처럼 수화기 내려놓으며

나 이제 너를 향해

한 통의 전화조차 할 수 없지만.

여보세요, 여보세요.

들려오는 네 음성 듣고서도 아무 말 할 수 없지만,

바깥에는 비 내리고

나는 지금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처음 본 지붕과 낯선 길들

끈질기게 따라온 절망을 버리기 위해 나는

정류장에서도, 편의점에서도,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쉴 새 없이 물건을 사고,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말하는 것만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듯

혼자 있는 방에서도 지껄였다.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는 말을 하고,

아무도 읽어주는 이 없는 글을 썼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렇듯 확인하는 일,

한때 네가 확인하던 내 마음처럼

두드리고 만져보는 일,

눈 대신 바깥에는 비 내리고

아무 것도 더 확인할 것 없는 너를 향해 나는

쓰고는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쓴다.

전화조차 할 수 없는 너,

사랑한다는 말이 죄가 되는 너,

나는 너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다





겨울강 / 도종환



얼어붙은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간다

얼음 속에 갇힌 빈 배같은 그대를 남겨 두고

나는 아직 살아 있어서 굽이굽이 강길을 걷는다

그대와 함께 걷던 이 길이 언제 끝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이 길을 걸어

새벽의 바다에 이르렀음을 끝까지 믿기로 한다

내가 이 길에서 끝내 쓰러진 뒤에라도

얼음이 풀리면 그대 빈 배만으로도 내게 와다오

햇살같은 넋 하나 남겼다 그대 뱃전을 붙들고 가거나

언 눈물 몇 올 강가에 두었다 그대 물살과 함께 가리라





겨울밤 / 복효근



감나무 끝에는 감알이 백서른 두 개

그 위엔 별이 서말 닷 되



고것들을 이부자리 속에 담아와

맑은 잠 속에

내 눈은 저 숲가에 궁구는 낙엽 하나에까지도 다녀오고



겨울은 고것들의 이야기까지도 다 살아도

밤이 길었다





겨울밤 / 신경림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뱄다더라 어떡헐거나

술에라도 취해 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 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 뿐

올해에는 닭이라고 쳐 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 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 다오 우리를 파묻어 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 편지라도 띄워 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 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 볼거나





겨울 저녁 서산에서 / 황동규



어른대던 사람들 둑에서 내려가고

한참 만에 사람 하나가 새로 올라간다

하늘과 땅을 가르고 있던 금 천천히 풀어지고

언제부터인가 눈이 자꾸

안 보이는 것을 찾고 있다

바티칸이 감추어 두었다

이따금 꺼내 보여주는 미켈란젤로 그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베드로 얼굴의 눈이

열심히 미켈란젤로를 찾는 그런 겨울 저녁

눈 친 벌판을 둘러보는 동박새의 눈

한 점 두 점 눈발이 시작되다

빗방울이 되어 날기도 하는

그런 저녁

가창오리 몇 마리 날아올라 허공을 휘돌다 사라진다

김용배의 설장구, 그 시원한 끄트머리!

빗방울 몇이 얼굴을 따갑게 때린다

손사래를 친다

지금 이곳이 지구 속인가 밖인가?

생각하다 말고 바람이 불고 있다





겨울강 두물머리 / 나상국



한 무리의 행락객 철새떼처럼

우르르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발자국마저도 휑한 두물머리



사백 년의 나이에도

거칠게 불타오른 느티나무의 열정

한 잎 나뭇잎으로 힘없이 떨어지고

모로 두러 누운 색바랜 풀들이

너을 너을 춤추던 쓸쓸한 강둑

강한 비바람이 몰려왔다가

스스로 몸을 낮추어

한 바퀴 돌아보고

에둘러 떠나간 두물머리



노만 덩그러니 남겨진 배 한 척

사공 잃은 황포돛배

새벽 안개에 갇혀

쨍쨍 강울음 소리에

머리채를 낚아채인듯

무릎 끓는다



금강산 골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린 북한강

태백산 검룡소를 힘차게 박차고 발원한 남한강

처녀 총각 만나듯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깊은 포옹으로 한몸이 되어 흐른다.





겨울강 / 이채



시간이 물처럼 흐르고 흘러

이제 차가운 겨울강이 되었다

온몸이 파르르 떨리는



추위는 몸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나는 것이라고

겨울강은 제 가슴도 보이지 않고



저 강물 소리없이 깊어가듯

당신과 나도 그렇게 꿈을 꾸며

하루 하루 깊어가는 것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한송이 만나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시린 시간이 흐르고 흘러

강바람 따뜻한 날

한마리 새가 분명 날아 올 것이라고



뜨거운 눈물과

차가운 눈물을 모두 제 가슴에 가두고

겨울강은 유달리 말이 없다





겨울강에서 / 정호승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겨울강 강언덕에 눈보라 몰아쳐도

눈보라에 으스스 내 몸이 쓰러져도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강물은 흘러가 흐느끼지 않아도

끝끝내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어

쓰러지면 일어서는 갈대가 되어

청산이 소리치면 소리쳐 울리.

다소곳한 귀일 뿐





겨울, 동강 / 서원동



문산나루 질퍽한 삼들

어라연 휘돌아 돌며 숨차 헐떡거리다

얼음짱 되어 문득 발걸음 멈춰 선곳

겨울 동강은

지친 몸 기대 술 곳초차 없이

삭막하다

산잠승들 뛰놀던 협곡 사이로

자갈톱 스쳐온 찬바람만

길게 한숨소리 내뿜고 있다

아무도 없다

앙상하고 고즈넉하다

응고된 피딱지인 듯

여기저기 나뒹구는 녹슨 깡통들

넝마 되어 펄럭대는 폐비닐 조각들

우리 모두의 마음 속

숨겨진 상처 마냥 한없이 삐걱거릴 뿐



겨울 동강은

이빨 빠진 늙은이가 뜯어먹다 남긴

풀빵처럼 곳곳에서 찐득거린다





겨울강가에서 겨울바람을 잡으며 / 정세일



겨울이 만든 강얼음위에 네모나게

얼음을 잘라 그 위에 사다리를 놓습니다.

차거운 물속에다 그믈을 쳐놓고

삼촌이 대나무 삼지창으로

강 바닥에 엎드려있는 겨울강을 잡고 있습니다.



큰 나무로 돌을 살짝 옆으로 비키면

고기들이 물위로 떠올라 옵니다.

대나무에 동그랗게 철사를 말아 만든

뜰채로 고기를 잡아 노란 양동이에 넣습니다.



잡혀지는 고기는 노란양동이속에 퍼뜩거립니다.

양동이속이 너무좁아 고기들이 업어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동그랗게 모여서서 겨울강을 잡는 구경을 합니다.

겨울강을 잡는 것은 기나긴 겨울바람을 잡는 것입니다.

겨울에 관한 시모음 43)



겨울 초대장 /신달자



당신을 초대한다.

아름다운 눈을 가진 당신.

그 빛나는 눈으로

인생을 사랑하는 당신을 초대한다.

보잘 것 없는 것을 아끼고

자신의 일에 땀 흘리는,

열심히 쉬지 않는

당신의 선량한 자각을 초대한다.

행복한 당신을 초대한다.

가진 것이 부족하고 편안한 잠자리가 없어도

응분의 대우로 자신의 삶을 신뢰하는

행복한 당신을 기꺼이 초대한다.

눈물짓는 당신,

어둡게 가라앉아 우수에 찬

그대 또한 나는 초대한다.

몇 번이고 절망하고

몇 번이고 사람 때문에 피흘린 당신을

감히 나는 초대한다.

당신을 초대한다. 겨울 아침에.

오늘은 눈이 내릴지 모른다.

이런 겨울 아침에 나는 물을 끓인다.

당신을 위해서.





겨울 시계 /곽재구



지나가는

비님

혹 들어오실까

창문 열었네



두 손 내밀어

가만히 보듬는

원죄의 서늘한 목소리



비님은

들어오시지 않고

헐벗은 나무 몇 그루

산그림자 속으로 걸어가네



새봄의 이파리만큼 많은 인생의 나날들

하루쯤 쉬어 엄격한 겨울의 시계가 파손되지 않는다면

그대여, 그대 발자국 찍힌 지상의 모든 안쓰러운 추억마다

성냥개비 끝 매달린 머루알만한 그리움의 불꽃들 새겨 두고 가시게나

가난한 사람들이 호호 입김을 불며

난로가 꺼진 눈보라 속으로 정처 없이 나아갈 때

그들 영혼의 텃밭 한 귀에 추운 매화꽃 한 송이 피어나게 하라.





겨울 /이창호

지금 세상은 새하얀 독을 푼 냉동창고

내 가슴 냉돌 위,
눈은 하염없이 퍼붓고 집 대문 밖,

-[시인의 길을 가겠다]-

등불처럼 내 걸린 무명시인의 문패,
사소한 삶이 시의 삶으로 소생하기까지
이 가슴,
얼마나 더 더워져야 할 것인가.

그러나
알몸의 시(詩)로 부활할 것들을 위해
또 다시 내 가슴 붉게 달구겠다.
후끈 달아올라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스스로 분향하여 이루어내게 될
새까만 재,
그 속을 파헤치면 사리(舍利)처럼
빛날 한줌의 시(詩).

죽음처럼 하얗게 창(窓)을 두드리는
눈보라 속에서도 몸,
따뜻하게 뎁혀 갈 한 줄의 삶, 그 위를
걷겠다.





겨울잠 /이규옥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저마다 분주히

오가는데 오가는데

잠을 잔다 잠을 잔다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제각기 어디론가 총총히 떠나는데

떠나는데 눈 뜨고 잠을 잔다 잠을 잔다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이제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데 뜬 눈 속으로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발자국조차 보이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데 잠 속 깊숙이 눈이 내린다

눈이 뿌리내린다 뿌리내린다 눈 뜬 잠 속으로 하얀

눈이 푸른 뿌리내린다 붉은 뿌리내린다 새하얀 눈이

푸른 꽃 내린다 붉은 꽃 내린다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겨울의 소리 /염인덕

하얀 솜털이 햇살 먹으면
은빛 찬란하게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놨습니다

축 늘어진 빨랫줄 쉬어가는데
전깃줄에는 지지배배 노래가
저 멀리 울려 퍼집니다

하얀 도화지 위에 나무는
수 국화꽃을 그려나
활짝 웃고 있어 아름답습니다

나도 하얀 꽃송이 되어
누군가에게 하얀 사랑을
하염없이 꺼내 주고 싶습니다.





겨울노래 /박신지



그대를 묻고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가랑잎처럼 가벼웠다

삭정바람 속으로 겨울새 한 마리

푸드득 빈 가지를 뿌리치고 간다



산 품 속에 안겨간다는 게 잠시

외로운 길이라지만

머지않아 나 또한 함께 할 길

그 길이 아스라이 보인다



발길에 채이는 마른 풀 포기 정겨웁다

내 머리카락 쓰다듬는 청솔 가지에

설렁이는 산바람이 향기롭기만 하다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

돌아가는 세상은 더욱 위대하다





겨울빨래 /김남조

시린 적설위에
묽은 아침해가
기도하듯 간절히 엎드려 있다
눈과 둘이서
한밤내 어둠을 밝힌
하얀 빨래들

이상하여라
순백이 순백위에 설풋 겹쳐진
빨래그림자 마저
살아 있듯이 유정하고
누리 안 냉쾌와 광명함이
섬세히 빗질하여
온세상 매듭들을 풀었구나
오로지 유순뿐이구나

일상의 예삿일 중에
새삼 황홀히 압도해 오는
아름다움들이

맑디밝게 영혼에까지 갈채 울리고
신의 나라인양
넉넉히 자족하는
이네들의 좌석에서

나의 할바란
최소한
비껴 서기라도 해야할까보다





겨울 나그네 7 /전병윤
-길

어누 땐가 상현달이
내 눈을 콕콕 찌르더니
오늘은 눈꽃이 핀
섣달 매화 가지에 앉아서
내 가슴을 두들겨 팬다

지금까지 놓고 온
디딤돌들이 흔들리는 이빨처럼
제자릴 못 잡고
하나씩 빠져나간다

그래, 철없는 나이라면
다시 이빨이 날 텐데
사람들은 지구처럼 공전과 자전을 못하고
왜 평면의 외길만 가고 있는가
이 눈 위에 발자국이라도 찍어보자
그래, 어느 봄이 왔다 가면서
흩뿌린 매화 꽃잎이
내 발자국에 머물러 주겠지.





겨울 나그네 1 /양채영

눈 섞인 바람이 분다
오라는 이 없어도 가야 하리
얼까말까 망설이는 개울을 옆구리에 끼고
붉은 망개열매와 멧새 떼에 길을 물어
마른 풀잎 쓰러져 흩날리는 논밭뙈기를 지나
술렁술렁 걸어서 가야 하리
내 조선시대 사모하던 선비들의 기골을 닮은
잡목숲과 낙낙장송과 거친 암벽이 솟아 있는
이 나라 눈 덮인 산악을 우러르며
산가마귀 우짖는 산협을 지나면, 어디선가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명년 춘삼월에 돌아올까
어―허이 어―화

건 쓴 상제들과 상여꾼과 선소리꾼이
흰 겨울산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들의 슬픔도 갖고 싶던 모든 것들이
눈발 속으로 날아가고 산은 더 높고 깊다
고사리국에 밥 한술 말아먹고 소주 한 잔 걸치고
무너진 산성을 지나면 호도나무 과목들 사이로
푸르딩딩한 냉이잎이 얼어있고
신라적 암각된 마애불이 길손을 맞는다
그는 이 산과 바위와 바람과 더불어
수척한 길손을 지키며 바랜다
흰 눈벌에 모여선 낙엽송숲의
자잘한 가지들이 더 가까이 더 가까이
겨드랑이를 끼고 겨울바람을 막아
수묵화처럼 허공중에 부풀어 있다
그 속에 누군가 저녁 등불을 켜고
그 머리 위로 겨울새떼가 돌아가고 있다
나는 것도 모여 있는 것도 걸어가는 것도
모두 춥다. 모두 간다. 모두 남는다.





겨울의 수목화[水墨畵] /진장춘



여름의 화려한 빛깔과

가을의 풍요와 슬픔

다 버리고

수묵화로 남은 빈들의 가난함



옷을 벗고 선 나목들이

경건히 기도하는 발치에

초가집에 잠자는 아이들처럼

눈 덮인 낙엽 속에 숨은

선한 짐승들의 배고픔

그리고 산의 큰 침묵



겨울의 산야는

곱게 늙은 고승처럼

성스럽다.





겨울 이야기 /조민희



숱한 사연을 묻어둔채

그렇게 가을은 떠나고...



우리동네 소래산에도

다시 겨울이 왔다.



온통 하얀 눈 으로 덮인

전나무 숲 소롯길 에는

스산히 눈발이 날리고...



산길 에는 듬성 듬성

등산객의 발자욱이 희미하다.



청솔모는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산새 들은 먹이 찾기 바쁘다.



산 그림자 짙어가는 늦은 오후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조그만 찻집에 앉아

따스한 한잔의 커피 향에

취해 본다.





겨울 하늘 1 /민경대

조그만 하늘이 열라고
무게있는 시간들이 춤을 추면서
시간을 자꾸 연장하며
거룩한 시간의 싹들이
이스트처럼 발효되면서
촛점늘 향해 시간은 타고 드는데
역사의 신들은 빌및에서 꿈틀거라며
용봉의 꽃봉우라 들이 수없이
호수에 수제비 뜨며
하나가 되어 하늘을 나르는 연은
다시 바람을 타고 더 높이 상승의 꿈나래 펴면서
앞서거나 뒷서거니 대화를 만들며
벽이 하물어진 춤사위 이미 활을 당겨
활을 하늘애서 그칠줄 모르면서
선화하는 무용은 초저녁 밤을 관통하고
새벽에 까지 희망의 눈부신 약속으로
한 점에 모였다
기도를 하면서 마음속에 눈이 내리면서
전설같은 서사시가 아담과 이브의 눈빛에
광채로 빛나며 더욱더 큰 보폭으로 하늘 문을 향해
걷고 있다





겨울동거 /김 문



아파트와 전철역 사이 왕벚나무 가로수

나무는 공중의 계절로 서식지를 옮긴 듯했다

모든 풍경은 야윈 못처럼 박혀 있고

쇠기러기 한 마리가 벚나무의 옹색한 구도 속에 거주를 시작했다



전철이 들어오면 풀등처럼 생기는 나무의 창

추위를 견딜 곳이란 제 날개밖에 없어

깃털에 부리를 묻고 솜뭉치처럼 웅크린 새가 있는 소묘 한 점

전철은 칸칸이 날개를 달고 와서 언 바람을 잔뜩 부려놓고 간다



벚나무의 적막에 든 새와 점점

새가 되어가는 벚나무가 시작한 겨울동거 서로

적막을 나눠 먹으며 언 밤을 견딘다

벚나무는 가끔 바람의 부피를 붙들고 날갯짓을 한다

스스로 깃털 빠진 새라고 믿는 것 같다



밤이면 건너편 임대아파트 몇몇 불빛들 건너와

쇠기러기 날개 밑에서 깜빡이다 간다.

마지막 전철이 출발하고 멀리 무소식의 밤

북쪽에서의 한때가 울컥울컥 목울대를 넘어 간다



몇 채의 세입자들이 적은 평수로 주소를 옮기고

며칠 후면 전기도 끊긴다는 갈 곳 없는 이들의 캄캄한 대낮

새의 부리가 나뭇가지를 톡톡 쫀다 찌릿찌릿

나무의 귀가 바람의 소리를 엿듣고,





겨울 나루터 /이남일

바람에 실려 왔다가
강물 따라 흘러가는 발자국 소리
보고 싶었소.

꽃잎이 날리던 자리에 눈발이 날리면
그리움은 천길 물속 별빛처럼 박히는데
강물이 얼고
갈대 숲에 함박눈이 쌓이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바라보다가
얼음 강 눈길 위를 끝도 없이 걸었소.

강둑을 만나 돌아오는 길에
찍고 온 내 발자국은 왜 이리 낯선지
걷다가 멈추다가 서성이던 모습들이
한줌 햇볕이면 안개처럼 스러지고 말
육신이 남긴 중력의 흔적들이
강물에 띄울 말 한 마디 담지 못한 채
문득 흰눈 속에 사라지더이다.

계절 따라 만날 것 같던 영혼의 노래여
눈발 날리면 서둘러 떠나는 겨울바람처럼
배 띄우면 물결 따라 닿는 곳에서
그냥 보고 싶었소.





겨울 등반 1 /강계순

풀뿌리에 고여 있는 몇 모금의 이슬
눈 먼 희망으로 허기를 달래고
빛나는 갈기 흔들어 바람을 가르면서
꿈의 두께만큼 깊이 굳어 온 살
철없이 성 내고 울먹이던 피 유순히 가라앉고
날개 떨어진 풍향계 하나 허섭쓰레기로 남아 있는
배낭 등에 걸치고
뒤돌아 보면 아득히
등불 켜 놓고 도란거리는 집들
어릴적 귀 익은 노래도 몇 마디
들리는 듯하다.
청청한 들판을 달려온 바람도
허리 굽히는 이 골짜기
등 넓은 바위들 사이로 설핏설핏 비추는 햇살
살 데이지 않을만큼 따스하여
한 생애의 끝에 이르는 길 말갛게 밝히고 있으니
혼자 숨어서 고이는 그리움 때때로 열어보던
녹슨 은빛 열쇠
무겁게 지고 다니던 곡괭이와
허공 휘젖던 잠자리채 팽팽한 방패 모두
이쯤에서 벗어 두고
가벼운 차림으로 옷 갈아 입는다.
아는 별자리 이름 한 개씩 내려 놓으면서
아직 남아 있는 몇 개의 등승이 향해
빈 손으로 떠나는 겨울 등반.

겨울 사랑
-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함박눈 내리는 낙산사 겨울 이미지 - 길에서 길을 묻다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 이의 붉은 깊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카톡 프사 배경 겨울 시 이미지 - 길에서 길을 묻다

겨울 사랑
-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함박눈 내리는 겨울 시 모음- 길에서 길을 묻다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겨울 시 추천 풍경 이미지 길에서 길을 묻다



- 신경림

내 몸이 이 세상에 머물기를 끝내는 날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 나갈 테다
나를 가두고 있던 내 몸으로 부터
어둡고 갑갑한 감옥으로 부터

나무에 붙어 잎이 되고
가지에 매달려 꽃이 되었다가
땅속으로 스며 물이 되고 공중에 솟아 바람이 될테다
새가 되어 큰곰자리 전갈자리까지 날아올랐다가
허공에서 하얗게 은가루로 흩날릴 테다

나는 서러워하지 않을 테야
이 세상에서 내가 꾼 꿈이
지상에서 한갓 눈물자국으로 남는다 해도
이윽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때 가서 다 잊는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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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 나태주

돌아서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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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 도종환

올해도 참나무 잎 산비알에 우수수 떨어지고
올해도 꽃진 들에 억새풀 가을 겨울 흔들리고
올해도 살얼음 어는 강가 새들은 가고 없는데
구름 사이로 별이 뜨듯 나는 쓸쓸히 살아 있구나.






앙상한 가지에 외로움과 고독이 너울 거리는 겨울 이야기 이미지 길에서 길을 묻다


겨울 이야기
- 김수용

세찬 겨울바람 불어와
소나무 가지 위에
작은 눈꽃마저
아스라이 사라져 버리고

낡은 창가에 걸쳐있는
앙상한 가지에는
외로움과
고독만이 너울 된다

벌거벗은 나목에 숨겨진
지난 가을의 잔영은
무심한 삭풍에
하나둘 잊혀져가니

얼굴을 스쳐 지나는
추억을 회상하며
겨울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람이 없는 텅 빈 거리에
바람이 분다
겨울, 참 쓸쓸하다





겨울 시 이미지 길에서 길을 묻다

겨울
- 조병화

침묵이다
침묵으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
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

바람은 지나가면서
적막한 노래를 부른다
듣는 사람도 없는 세월 위에
노래만 남아 쌓인다

남아 쌓인 노래 위에 눈이 내린다
내린 눈은, 기쁨과 슬픔
인간이 살다 간 자리를
하얗게 덮는다

덮은 눈 속에서
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내어
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
봄을 준비한다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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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 윤보영

들판 가득 눈이 내렸습니다
그대에게 글을 적을 수 있게
하늘이 배려했나 봅니다
그림까지 곁들여 적고 보니
들판보다 더 넓은
내 마음이었네요

오늘처럼, 매일
그대 생각하며
글만 적었으면 좋겠어요





눈 덮힌 산길 이미지 길에서 길을 묻다


눈 오는 저녁
- 김소월

바람 자는 이 저녁
흰눈은 퍼붓는데
무엇하고 계시노
같은 저녁 금년(今年)은……

꿈이라도 꾸면은!
잠들면 만날런가.
잊었던 그 사람은
흰눈 타고 오시네.

저녁때, 흰눈은 퍼부어라






겨울 카톡 배경 글귀 이미지 길에서 길을 묻다

겨울 편지
- 이해인

친구야
네가 사는 곳에도
눈이 내리니?

산 위에 바다 위에 장독대 위에
하얗게 내려 쌓이는 눈만큼이나

너를 향한 그리움이 눈사람 되어
눈 오는 날

눈처럼 부드러운 네 목소리가
조용히 내리는 것만 같아

눈처럼 깨끗한 네 마음이
하얀 눈송이로 날리는 것만 같아

나는 자꾸만 네 이름을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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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눈
- 김광규

겨울밤
노천 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연탄 겨울 시 이미지 길에서 길을 묻다

연탄 한 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 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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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에게
- 정호승

내 오늘도 그대를 위해
창밖에 등불 하나 내어 걸었습니다.
내 오늘도 그대를 기다리다 못해
마음 하나 창밖에 걸어 두었습니다.
밤이 오고 바람이 불고
드디어 눈이 내릴 때까지
내 그대를 기다리다 못해
가난한 마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눈 내린 들길을 홀로 걷다가
문득 별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겨울에 관련된 좋은 시 첫눈 이미지 - 길에서 길을 묻다


흰 눈이 소담스럽게 쌓이듯 사랑도 크게 쌓여가는 겨울 시 모음으로 이 겨울을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하게..

첫눈
- 이정하

아무도 없는 뒤를
자꾸만 쳐다보는 것은
혹시나 네가 거기 서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너는 아무 데도 없었다.

낙엽이 질 때쯤
나는 너를 잊고 있었다.
색 바랜 사진처럼
까맣게 너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첫눈이 내리는 지금,
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
너의 생각이 싸아하니
떠오르는 것은 어쩐 일일까.

그토록 못 잊어 하다가
거짓말처럼 너를 잊고 있었는데
첫눈이 내린 지금

자꾸만 휑하니 비어 오는
내 마음에 함박눈이 쌓이듯
네가 쌓이고 있었다.





겨울에 너에게 보내는 눈 쌓인 즐거운 편지 이미지 길에서 길을 묻다

즐거운 편지
-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겨울 카톡 프사 배경 이미지 가을이 다 가기전 단풍에 살며시 내린 눈 - 길에서 길을 묻다


눈 위에 쓰는 겨울 시
- 류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폭설이 내린 겨울 시 이미지&nbsp; 길에서 길을 묻다

눈 오는 지도(地圖)
- 윤동주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 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 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장이 하얗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훌훌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로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그만 발자국을 눈이 자꾸 내려 덮어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겨울 관련 겨울 시 이미지 길에서 길을 묻다

겨울날의 희망
- 박노해

따뜻한 사람이 좋다면
우리 겨울 마음을 가질 일이다

꽃 피는 얼굴이 좋다면
우리 겨울 침묵을 가질 일이다

빛나는 날들이 좋다면
우리 겨울밤들을 가질 일이다

우리 희망은, 긴 겨울 추위에 얼면서
얼어붙은 심장에 뜨거운 피가 돌고
얼어붙은 뿌리에 푸른 불길이 살아나는 것

우리 겨울 마음을 가질 일이다
우리 겨울 희망을 품을 일이다





겨울 눈사람 이미지 길에서 길을 묻다


눈사람
- 도혜 김혜진

첫눈 내리던 어느날
그사람이 만들어 준
작은 눈사람 하나

장독위에 올려두고
오며가며 그사람 보듯
슬쩍 슬쩍 훔쳐보고

남몰래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붉히고는 했다

지금 이순간 당신도
첫눈을 보고있나요

그날의 눈사람은 없어도
내가슴속의 눈사람은 아직도 장독위에 서있습니다






폭설이 내리는 낙산사에서 길에서 길을 묻다
폭설
- 도종환

폭설이 내렸어요 이십 년만에 내리는
큰눈이라 했어요 그 겨울 나는 다시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지요
때묻은 내 마음의 돌담과 바람뿐인
삶의 빈 벌판 쓸쓸한 가지를 분지를 듯
눈은 쌓였어요
길을 내러 나갔지요
누군가 이 길을 걸어오기라도 할 것처럼
내게 오는 길을 쓸러 나갔지요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먼지를 털고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내 가슴 속
빈 방을 새로 닦기도 했어요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내 사랑 누군가에게 화살처럼 날아가 꽂히기보다는
소리 없이 내려서 두텁게 쌓이는 눈과 같으리라 느꼈어요
새벽 강물처럼 내 사랑도 흐르다
저 홀로 아프게 자란 나무들 만나면
물안개로 몸을 바꿔 그 곁에 조용히 머물고
욕심없이 자라는 새떼를 만나면
내 마음도 그렇게 깃을 치며 하늘을 오를 것 같았어요
구원과 절망을 똑같이 생각했어요
이 땅의 더러운 것들을 덮은 뒤 더러운 것들과 함께
녹으며 한동안은 때묻은 채 길에 쓰러져 있을
마지막 목숨이 다하기 전까지의 그 눈들의 남은 시간을
그러나 다시는 절망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어요
눈물 없는 길이 없는 이 세상에
고통 없는 길이 없는 이 세상에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가 사랑하는 일도 또한 그러하겠지만
눈물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지 않기로 했어요
내가 다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다시 삶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며
더 이상 어두워지지 말자는 것이었지요.





겨울 이미지ⓒpixabay

12월의 엽서
- 이해인

12월엔 그대와 나
따뜻한 마음의 꽃 씨 한 알
고이고이 심어주기로 해요

찬바람 언 대지
하얀 눈 꽃송이 피어날 때
우리도 아름다운 꽃 한 송이
온 세상 하얗게 피우기로 해요

이해의 꽃도 좋고요
용서의 꽃도 좋겠지요
그늘진 외딴 곳
가난에 힘겨운 이웃을 위해
베풂의 꽃도 좋고요
나눔의 꽃도 좋겠지요

한 알의 꽃씨가
천송이의 꽃을 피울 때
우리 사는 이 땅은
웃음꽃 만발하는 행복의 꽃동산
생각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사랑이 될 때
사람이 곧 빛이요 희망이지요

홀로 소유하는 부는 외롭고
함께 나누는 부는 의로울 터
말만 무성한 그런 사랑 말고
진실로 행하는 온정의 손길로
12월엔 그대와 나
예쁜 사랑의 꽃 씨 한 알
가슴마다 심어주기로 해요





ⓒPIXABAY

겨울나기
- 도종환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주려고
고갯 마루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뒷모습처럼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
부스러진 잎사귀와
끌려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
그래도 뿌리 하나로
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

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
떨어진 잎 이 세상 거리에
황망히 흩어진 뒤
뿌리까지 얼고만 밤
씨앗 하나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

이 겨울 우리 몇몇만
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 해도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





밤에 내리는 첫 눈과 폭설 이미지 길에서 길을 묻다

첫눈 생각
- 김재진

입김만으로도 따뜻할 수 있다면 좋겠다.
기다리는 눈은 안 오고 손가락만 시린 밤
네 가슴속으로 내려가
너를 깨울 수만 있다면 나는
더 깊은 곳 어디라도 내려갈 수 있다.
종소리에 놀란 네가 잠에서 깨고
잠옷바람으로 언뜻 창밖을 내다볼 때
첫눈 되어 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반색하며 기뻐하는 너를 위해
이 세상 어디라도 쌓일 수만 있다면 좋겠다.
햇빛에 녹지 않는 응달이 되어
오래도록 네 눈길 끌었으면 좋겠다.





겨울 이미지ⓒpixabay

다시 겨울 아침에
- 이해인

몸 마음
많이 아픈 사람들이
나에게 쏟아놓고 간 눈물이

내 안에 들어와
보석이 되느라고
밤새 뒤척이는
괴로운 신음 소리

내가 듣고
내가 놀라
잠들지 못하네

힘들게 일어나
창문을 열면

나의 기침 소리
알아듣는
작은 새 한 마리
나를 반기고

어떻게 살까
묻지 않아도

오늘은 희망이라고
깃을 치는 아침 인사에

나는 웃으며
하늘을 보네





겨울 카톡 프사 배경 이미지 길에서 길을 묻다

겨울 고해
- 홍수희

겨울밤엔
하늘도 빙판길입니다

내 마음 외로울 때마다
하나 둘 쏘아 올렸던
작은 기도 점점이
차가운 하늘밭에서
자꾸만 미끄러져
떨어지더니

잠들었던
내 무딘 영혼에
날카로운 파편으로
아프게 박혀 옵니다

사랑이 되지 못한
바램 같은 것
실천이 되지 못한
독백 같은 것

더러는 아아,
별이 되지 못한
희망 같은 것

다시 돌아다보면
너를 위한 기도마저도
나를 위한 안위의
기도였다는 그것

온 세상이 꽁꽁 얼어
눈빛이 맑아질 때야
비로소 보이는 그것

겨울은,
나에게도 숨어있던
나를 보게 합니다





겨울 강 이미지ⓒpixabay

겨울 강
- 정호승

꽝꽝 언 겨울 강이
왜 밤마다 쩡쩡 울음소리를 내는지
너희는 아느냐

별들도 잠들지 못하고
왜 끝내는 겨울 강을 따라
울고야 마는지
너희는 아느냐

산 채로 인간의 초고추장에
듬뿍 찍혀 먹힌
어린 빙어들이 너무 불쌍해

겨울 강이 참다 참다 끝내는
터뜨린 울음인 줄을





겨울 밤 풍경 이미지ⓒpixabay


겨울 초대장
- 신달자

당신을 초대한다
오늘은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
이런 겨울 아침에 나는 물을 끓인다
당신을 위해서

어둠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내 힘이 비록 약하여 거듭 절망했지만
언젠가 어둠은 거두어지게 된다

밝고 빛나는 음악이 있는 곳에
당신을 초대한다

가장 안락(安樂)한 의자와 따뜻한 차와
그리고 음악과 내가 있다

바로 당신은 다시 나이기를 바라며
어둠을 이기고 나온 나를 맨살로 품으리라

지금은 아침
눈이 내릴 것 같은 이 겨울 아침에
나는 초인종 소리를 듣는다

눈이 내린다
눈송이는 큰 벚꽃 잎처럼 춤추며 내린다

내 뜰안에 가득히
당신과 나 사이에 가득히
온누리에 가득히

나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그리고 새롭게 창을 연다

함박눈이 내리는 식탁 위에
뜨거운 차를 분배하고
당신이 누른 초인종 소리에 나는 답한다

어서 오세요
이 겨울의 잔치상에






눈 내리는 밤 풍경 ⓒpixabay

눈 내리는 밤
- 강소천

말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누나도 잠이 들고
엄마도 잠이 들고

말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나는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pixabay


- 김소월

새하얀 흰 눈, 가비얍게 밟을 눈,
재 같아서 날릴 꺼질 듯한 눈,
바람엔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계집의 마음. 임의 마음





ⓒpixabay


12월의 시
최연홍

12월든 잿빛 하늘, 어두워지는 세계다
우리는 어두워지는 세계의 한모퉁이에
우울하게 서 있다

이제 낙엽은 거리를 떠났고
나무들 사이로 서 있는 당신의 모습이 보인다
눈이 올 것 같다. 편지처럼

12월엔 적도로 가서 겨울을 잊고 싶네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한 해가 가는 것을 잊고 싶네
아니면 당신의 추억 속에 파묻혀 잠들고 싶네
누군가가 12월을 조금이라도 연장해준다면
그와 함께 있고 싶네
그렇게 해서 이른 봄을 만나고 싶네, 다람쥐처럼

12월엔 전화 없이 찾아오는 친구가 다정하다
차가워지는 저녁 벽난로에 땔 장작을 두고가는 친구
12월엔 그래서 우정의 달이 뜬다

털옷을 짜고 있는 당신의 손,
질주하는 세월의 삐걱거리는 소리,
바람소리, 그 후에 함박눈 내리는 포근함

선인장의 빨간 꽃이 피고 있다
시인의 방에는 장작불이 타고 있다
친구의 방에는 물이 끓고 있다
한국인의 겨울에는





ⓒpixabay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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