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모음

와서는 가고 한용훈

뉴우맨 2023. 5. 30. 23:57


만해 한용운의 시

와서는 가고 입고는 벗고 잡으면 놓아야 할
윤회의 이 소풍길에
우린 어이타 깊은 인연이 되었을꼬

봄날의 영화 꿈인 듯 접고,
너도 가고 나도 가야 할
저 빤히 보이는 길 앞에왜 왔나 싶어도
그래도 아니 왔다면 많이후회했겠지요?

노다지처럼 널린 사랑 때문에 웃고
가시처럼 주렁한 미움 때문에 울어도
그래도 그 소풍 아니면
우린 어이 정다운 인연이 맺어졌겠습니까?

한 세상 살다 갈 이 소풍길 원 없이 울고 웃다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낫단 말
빈말이 안 되게 말입니다

우리 그냥 어우렁 더우렁
그렇게 더불어 즐기며 살다가
미련 없이 소리 없이 그냥 훌쩍 떠나 가십시다요



나룻배
      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낙 화 (落 花)
                                                           한용운

떨어진 꽃이 힘없이 대지의 품에 안길 때
애처로운 남은 향기가 어디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가는 바람이 작은 풀과 속삭이는 곳으로 가는 줄을 안다.
떨어진 꽃이 굴러서 알지 못하는 집의 울타리 사이로 들어갈 때에
쇠잔한 붉은 빛이 어디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부끄러움 많고 새암 많고 미소 많은 처녀의 입술로 들어가는 것을 안다.

떨어진 꽃이 날려서 작은 언덕을 넘어갈 때에
가없은 그림자가 어디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봄을 빼앗아 가는 아가의 발밑으로 사라지는 줄을 안다.


사랑하는 까닭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卍海(만해) 한용운 선생의  詩

♥♥♥ㅡ 언젠가는 ~~~

언젠가... 말 못할 때가 옵니다. ~  따스한 말 많이 하세요. ~ 언젠가... 듣지 못할 때가 옵니다. ~ 값진 사연, 값진 지식 많이 보시고 많이 들으세요 언젠가... 웃지 못할 때가 옵니다. ~ 웃고 또 웃고 활짝 웃으세요. ~

언젠가... 움직이지 못할 때가 옵니다. ~ 가고픈 곳 어디든지 가세요. ~ 언젠가... 사람이 그리울 때가 옵니다. ~ 좋은 사람 많이 사귀고 만나세요. ~ 언젠가... 감격하지 못할 때가 옵니다. ~ 마음을 숨기지 말고 표현하고 사세요. ~ 언젠가... 우리는 세상의 끝자락에 서게 될 것입니다. ~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후회없는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물처럼 지혜롭고, 쉬지않고, 냉정하게 흐르는 인생으로 늘 웃음 가득한 나날들 되세요~~~


♥♥♥卍海(만해) 한용운 선생의  詩

와서는 가고, 입고는 벗고, 잡으면 놓아야 할, 윤회의 이 소풍길에!!

우린, 어이타 깊은 인연이 되었을꼬!! 봄날의 영화 꿈인듯 접고, 너도 가고 나도 가야 할, 저 빤히 보이는 길 앞에, 왜 왔나 싶어도!

그래도... 아니 왔다면 많이 후회 했겠지요?? 노다지처럼, 널린 사랑  때문에 웃고, 가시처럼 주렁주렁 미움 때문에 울어도,

그래도, 그 소풍 아니면 우린 어이 정다운 인연이, 맺어졌겠습니까??

한 세상, 살다 갈, 이 소풍길!! 원없이 울고 웃다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낫단 말, 빈말이 안 되게 말입니다!!

우리, 그냥 어우렁 더우렁, 그렇게 더불어 즐기며 살다가, 미련없이 소리없이 그냥 훌쩍 떠나 가십시다요!!

모셔온 글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volcanon717&logNo=223069868610&proxyReferer=https:%2F%2Fm.search.daum.net%2Fsearch%3Fw%3Dfusion%26DA%3DPGD%26q%3D%25EB%25A7%258C%25ED%2595%25B4%2B%25ED%2595%259C%25EC%259A%25A9%25EC%259A%25B4%2B%25EC%258B%259C%2B%25EC%2599%2580%25EC%2584%259C%25EB%258A%2594%2B%25EA%25B0%2580%25EA%25B3%25A0%26p%3D3

부처님과 스님에 관한 시모음 11)



서산 마애삼존불     /목필균



바위의 불성을 깨운 석공

그 투박한 손길을 만진다



눈 크게 뜨고 미소 짓는 부처님

풍화되지 않는 자비심이 빛난다



탐욕의 무거운 짐 내려놓으면

미소 짓지 않을 일이 무엇이랴



날아갈 듯한 가파른 절벽에

머무른 삼세 부처님이

전생도 이승도 내세도

불국정토의 땅으로 인도한다



서산 마애삼존불 미소

그 아름다운 파장에

가슴 적시며 바람이

반야심경을 봉독한다





팔공산 갓 바위    /김윤수



온갖 상념으로

흔들리는 버스 안

청아한 독경소리

지친심신 달래고

마음은 천길 심안의 계곡속으로

우는 마음을 넣는다

너무 깊어서

이제는

험한 세상을 못볼거야

그 곳 사바세계는

시기도

마음의 욕심도

서로의 불신도 필요 없는

깊고 깊은

그런 세상이니까



조용히 마음을 재우며

눈을 감은지 한 시간

팔공산 주차장에 차는 세워지고

각자 바랑을 짊어지고

고행의 계단을 오른다

내가 만들고

내가 생각하며

살며 키워온 아귀병(餓鬼病)

영험하신 부처님 앞에

봉양 미 올리고

향불 피우며 초에 불 밝혀

마음에 짐 부려 논다

각자 흩어지려하는 저 바람과 욕심

108배로 정리하며

마음에 짐을 태운다





덜된 부처         /홍사성

실크로드 길목 난주 병령사 14호 석굴입니다

눈도 코도 귀도 입도 없이 형체만 갖춘
만들다 만 덜 된 불상이 있습니다

다 된 부처는 더 될게 없지만
덜 된 부처는 덜 돼서 될 게 더 많아 보였습니다

그 앞에 서니 나도 덩달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부처        /김진경



치자꽃 향기가 좋아

코를 댔더니

그 큰 꽃송이가 툭 떨어지다

귀한 꽃 다친 게 미안해서

손바닥 모아

꽃송일 감추었더니

합장 인산 줄 알았던가?

보는 이마다

합장한 채 고개를 숙이고 간다

어허, 여기선



치자꽃이 부처일세!





스님       /김병수



정월 찬바람

새벽 여명을 봅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 너머 산사를 봅니다

고드름 둘러친

서릿발 문고리 선방을 봅니다

낡은 문풍지 틈새

얼어붙은 화두를 봅니다

촛불 다함에

녹아내릴 번뇌를 봅니다

머잖아 장삼 터는

문지방 미소를 봅니다

벌써 불어오는

그날 봄바람을 봅니다





아침부처         /정일근



나는 아침을 부처라 부르고 싶다

멀리 있는 산이 구름을 피워

길게 누운 몽유도원도가 펼쳐지고

들판은 벼가 익어 황금 정원을 만든다

세수하려고 받아놓은 물에

먼저 세수하고 가는 파란 하늘이 새파랗다

멀어질수록 아득한 수묵화가 되고

가까워질수록 선명한 거울이 되는

은현리 아침마다 나는 스스로 맑아진다

밤은 나를 삼으로 만들고

아침은 나를 시인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나는 밤마다 짐승처럼 잠이 들고

아침마다 사람으로 눈을 뜬다

가르침처럼 아침이 찾아온다는 것은 축복이다

나는 아침부처에게 절을 올린다



* 아침부처: 필자가 만든 합성어





삼막사 스님      /松花 김윤자

해는 붉게 익어 속찬 열매로
서산에 덩그러니 매달리고
하늘도 땅도 너그러이 눈감아
속세에 떠도는 허물
땅거미 내리어 덮으실 제

마디 마디 육신 꺾어
부처님 전 예불 올리는
삼막사 스님
애간장 녹아 흐르도록
자신을 태워 사르고 또 사르고

승복 속 하얗게 비운 마른 가슴에
더 씻길 그 무엇 남았길래
무심히도 흐르는 번뇌의 강 저리 깊어서
이 밤 百拜로 건너시려나.

관악산 허리 긴 능선
성불의 너럭바위 이루시어
하늘 가까운 이곳
산정에 오른 뭇세인들
발 끝에 묻혀온 속진 털어 주시길
이 밤 千拜로 비오시려나

三界의 얽힌 죄업 한줌까지
올올이 풀어내시려
묏봉 피 서리게 토해내는
묏등 뼈 휘도록 깎아내는
저 통성 염불소리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

*삼막사: 관악산 해발 455.5m에 위치한 절.





깨어있는 부처       /정병근



난초는 아름답고도 균형잡힌 꽃을 만들어 낼줄 알며

달팽이는 아름답고 比例가 완벽한 집을 지을줄 안다



재중왕 나비와 목련나무 앞에서 두손을 모아야 하고

尊重心을 가지고 누군가를 맞이하면 그것이 부처라





각원사 청동좌볼상        /隱石 김영제



또하나 우리의 자랑이어라

태조봉 사부능선 긴그림자

그 크기 동양의 최대이어라

천안시 각원사 청동좌불상



조각조각 부분모아 맞츄며

연꽃으로 모실때 일년가고

조심조심 몸통잇고 이을때

여름장마 겨울폭설 십년갔네



매일매일 긴 그림자 그늘삼아

법석깔고 가부좌로 강설모임

고려불교 천년의 호국정신속에

연화사의 와볼 미암사의 와불

약수암의 목불과 함께 우리의 자랑이어라 나무아미타불





스님       /해련 류금선



한 세상 살아가는 것이

걱정 없고 고통 없는 사람 없으니

중생들 근심 끝이 없네



모든 게 다 전생의 인연이라오

전생의 업보가 오늘의 고통이니

현실을 슬기롭게 이겨내야

래생에서 그 짐을 덜 수 있다오



수많은 중생을

보듬어 안은 스님의 말씀

한마디 말씀에도 위안이 되는 보살들



백팔번뇌 잊으려고

합장하고 눈감아도

속세에 묻힌 정 풀리지 않고



스님의 염불 소리

전생의 인연으로 와 닿았는가

가까이 들리는 목탁소리 정겨웁다.





운주사 와불      /강우식



부처님도 남녀가 같이 누우니

아름다웠다.

온돌방 같은

돌판 위의 운주사 와불.



사랑이었다.

캄캄 눈먼 사랑이었다.

사랑도 눈먼 사랑이 좋았다.

부처님도 중생도 같았다.



나는 천리 먼 길을

이 와불 한 쌍을 보기 위해

그녀와 왔다.



사랑이 돌이 되어 변치 않고

그저 남녀가 누워 있는 것을 보기 위해

사랑이 돌이 되어 변치 않고

그저 일심동체면 되는 것을 보기 위해

사랑이 돌이 되어 변치 않고

그저 부처님도 남녀인 것을 보기 위해



사랑은 비움으로써 환해지는 것이 아니라

있음으로써 없음을 채우는

물상임을 보기 위해 예까지 왔다.



사랑은 둘이어야 됨을

부처님은 묵언하고

행실로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죽어서도 저 와불처럼

천만년 남아 있으리.

내 마음속 소망을 그녀에게

말없이 보여주기 위해 왔다.



그녀가 내 손을 가만히 잡았다.





늙은 부처들     /김사이



눈이 짝짝인 부처는 무엇을 보는지 초점이 없고

벌어진 입술은 까맣다

등이 굽은 부처는 눈 한쪽만 남아

입술은 갈매기처럼 굳게 다물어져 있는데

온 살덩이 날것으로 보시한 건가

군데군데 뜯겨지고 패여 있다

양반다리로 앉아 있는 부처들

말할 듯 말듯 한 오만상에

아버지 같고 이웃 아재 같고 사십 년 후 나 같기도 하다

구부정하니 양 주먹 쥐고 앉아 있는 늙은 부처들

평생 죽을 수 없고 살 수도 없는 그저

고통스러워 못내 못 가는지 안 가는지



쫓겨나서 갈 데가 없었나

돌아온 부처인가 혹은 누군가 잘못 만들어서 찌그러졌을지

하필이면 고미술품 전시장에 있다





옷 짓는 승려      /한용운



나는 당신의 옷을 다 지어 놓았습니다.

심의도 짓고 도포도 짓고 자리옷도 지었습니다.



짓지 아니한 것은 작은 주머니에

수놓은 것뿐입니다.



그 주머니는 나의 손때가 많이 묻었습니다.

짓다가 놓아두고

짓다가 놓아두고 한 까닭입니다.



다른 사람은 나의 바느질 솜씨가 없는 줄로 알지만

그러한 비밀은 나 밖에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쓰린 때에

주머니에 수를 놓으면, 나의 마음은

수놓은 금실을 따라서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고

주머니 속에서 많은 노래가 나와서

나의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아직 이 세상에는 그 주머니에 넣을 만한 무슨

보물이 없습니다.



이 작은 주머니는 짓기 싫어서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짓고 싶어서 다 짓지 않는 것입니다.





범종      /신현배



천 년쯤 살았으면

목청도 녹슬 만한데



울리는 그 소리만은

하늘빛을 닮았다.



날마다 하늘을 깨워

그렇게 맑은가 보다.



검버섯이 끼어 있는

구릿빛 얼굴인데



절에 사는 큰스님은

범종 소리를 닮았다.



날마다 범종을 깨워

그렇게 맑은가 보다.





목이 달아난 돌부처     /이아영



해돋이를 보려면 석굴암을 올라야 해 눈 비비고 초롱초롱 보아도 라훌라는 눈감고 있었어 불국사

에서 아사달과 아사녀가 석가탑 그림자 속에서 연리지로 부둥켜안고 있었어 천마총의 말다래는 자

작나무껍질에 무좀이 생겼어 포석정의 물길은 메마른지 오래고 빈잔만 구름 위에서 시를 끄적이고

있었어 변비에 걸린 견훤이 부러진 칼을 품고 경애왕 앞에서 무릎 꿇고 있었어 남산에 돌부처들은

목이 다 달아나고 없었어 온종일 다닌 발자국은 포토죤을 못 찾고 투명한 허무만 헛디뎠지 첨성대

는 여름을 톱질하는 매미 울음소리에 기우뚱하고 기우뚱하고





벌집 속의 달마     /김선우



불영산 수도암에 갔다가

비로자나 부처님과 한바탕 엉겼네

신랏적 부처들은 왜 그리 섹시하냐고

슬쩍 농을 건넸더니 반개한 두 눈 스르르 뜨시네

'실라'라는 발음은 로맨틱해요

허리춤을 간질였더니 예끼, 손을 저으시네

천년 예술의 균형미 따위

선화공주와 서동방은 아랑곳 않을걸요

아사달 아사녀의 달아오른 눈빛이

부럽지 않았나요 허허, 웃는 비로자나 부처님

아름다운 귓불이 벌게지셨네

色卽是空을 설한 부처의 몸을 빌려

관능을 조각한 석공의 번뇌……

법당 앞 고즈넉이 서 있는 삼층석탑

금 간 탑신 아래 주먹만 한 벌집이 매달려 있었네

천년 세월 돌꽃은 피고 지고

벌집 속으로 무상하게 드나드는 달마들

선남선녀 옷자락이 하염없이 스쳐가네



이 뭣꼬!

부처를 범했더니 거기 내가 있네





석불(石佛)     /장석주



죽산 가는 길목,

머리 없는 석불

둘이 서서 비에 젖는다.



사그막골 두 노인네

점심 끼니로 찐 감자 두어 개

천일염에 찍어 먹고

종일 오시는 비나

내다본다.





먹빛       /박기섭

- 동대구역 대합실에서



여승도 늙는구나,

늙은 여승 둘이서 먹물 옷 먹물 실을 올올이 풀어내다 멀거니 창밖을 본다,

진눈깨비 치는 창밖



아무래도 이승 얘기는 아닌 듯한 그런 얘기를 이승 사람 아닌 듯이 먹빛으로 건네주고는 태연히 또 먹빛으로 건네받고는 한다





석가의 날     /조병화



부처님은

아카시아꽃이 피어 만발한



향기로운 꽃의 파도를 타시고

올해는 이곳에 오셨구나



오월 하늘이 높게높게 솟은

푸른 곳에, 훤히

흰 꽃 너울너울 향기의 파도를 타시고



빙그레 웃으시며

어머님도 같이 오셨구나



아, 무한한 이 기쁨,

사람의 작은 가슴으로 어찌 다하리

이곳은 이렇게 아직도 어수선합니다



그러나 오월은 세월 중 가장 좋다는 달

편히 쉬시다 돌아가십시오



번뇌로운 불안이 가시지 않는

우리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꽃싸움

                           한용운

당신은 두견화를 심으실 때에 ‘꽃이 피거든 꽃싸움하자’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 가는데 당신은 옛 맹세를 잊으시고 아니 오십니까.

나는 한 손에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한 손에 흰 꽃수염을 가지고 꽃싸움을 하여서 이기는 것은 당신이라 하고, 지는 것은 내가 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만나서 꽃싸움을 하게 되면, 나는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당신은 흰 꽃수염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나에게 번번이 지십니다.

그것은 내가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에게 지기를 기뻐하는 까닭입니다.

번번이 이긴 나는 당신에게 우승의 상을 달라고 조르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방긋이 웃으며, 나의 뺨에 입맞추겠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 가는데 당신은 옛 맹세를 잊으시고 아니 오십니까.

한용운, 1926,《님의침묵》

나는 잊고자
                      한용운

남들은 님을 생각한다지만

나는 님을 잊고자 하여요

잊고자 할수록 생각하기로

행여 잊힐까 하고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잊으려면 생각하고

생각하면 잊히지 아니하니

잊지도 말고 생각도 말아 볼까요.

잊든지 생각하든지 내버려 두어볼까요.

그러나 그리도 아니 되고

끊임없는 생각생각에 님뿐인데 어찌하여요.



구태여 잊으려면

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잠과 죽음뿐이기로

님 두고는 못하여요.



아아, 잊히지 않는 생각보다

잊고자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롭습니다.


- 시선집 [ 님의 침묵 ] 와이 앤 엠, 2020. P 19/20

꽃이 먼저 알아
                         한용운

옛집을 떠나서 다른 시골에 봄을 만났습니다.

꿈은 이따금 봄바람을 따라서 아득한 옛터에 이릅니다.

지팡이는 푸르고 푸른 풀빛에 묻혀서 그림자와 서로 따릅니다.



길가에서 이름도 모르는 꽃을 보고서 행여 근심을 잊을까 하고 앉았습니다.

꽃송이에는 아침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아니한가 하였더니

아아, 나의 눈물이 떨어진 줄이야 꽃이 먼저 알았습니다.

- 시선집 [ 님의 침묵 ] 와이 앤 엠, 2020. P 71

해당화
                         한용운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합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 시선집 [ 님의 침묵 ] 와이 앤 엠, 2020. P 62



https://blog.naver.com/somanghanda929/222944475350

삶에 관한 시 모음

마음이 고요하니 삶이 고요하여라 - 이채 스스로 간결히 묻고 스스로 바로 세우니 한가로운 것이 어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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