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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시간만 울자

뉴우맨 2023. 4. 19. 23:57


😭💦 딱 한 시간만 울자

세계적인 성악가 테너 '앙드레 보첼리(Andrea Bocelli)' 人間勝利를 自述한 생애사입니다
  
제 이름은,Andrea Bocelli 1958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죠. 부모님은 포도와 올리브 농사를 지으셨지만, 음악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저는 여섯 살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고 플루트와 색소폰도 배웠죠. 전 노래 부르기를 가장 좋아했구요, 축구도 아주 좋아했어요. 열두 살 때 일이예요.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그만 공에 눈을 강하게 맞고 말았어요.

좀 아프고 말 줄 알았는데, 며칠 뒤 눈이 완전히 안보이게 되고 만거죠. 가족들과 친구들 모두 슬퍼했어요. 그때 전 어렸지만...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딱 한 시간만 울자. 그리고 이 어두운 세계에 빨리 적응하자구요.

부모님은 말씀하셨어요. 눈이 보이지 않으니, 힘을 길러야 한다구요. 법학도가 되는 것이 어떻겠나고 하셨죠. 전 열심히 공부해서 피사 대학에 진학해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어요. 변호사로 일하게 됐을 때 부모님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기뻐해주셨어요.

모두들 저를 가르켜 ‘인간승리’라며 추켜 세워주더군요. 하지만 전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게 있었거든요. 바로 성악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음악을 하겠다고 하자, 모두 저를 만류했습니다.

시력장애인으로 대중 음악가라면 모를까, 클래식 음악을, 그것도 오페라를 한다는 건 불가능할거라고 말이죠. 그러나 전 제 꿈을 이루기 위해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정통 성악 수업을 받았고 전설의 테너라 불리던 프랑코 코렐리 선생에게  음악 지도를 받았습니다.

물론 클래식 음악가에게 있어 악보를 볼 수 없다는 거. 그게 치명적인 결점이었지만 악보를 머릿속에 모두 집어넣으려 애썼습니다. 얼마 뒤 제 평생 꿈이었던 오페라 무대에 서는 기회도 얻게 됐습니다. 오페라 라보엠이었어요.

어떤 비평가들은 오페라가 무슨 장난인줄 아냐며, 저를 비롯한, 무대를 준비한 모든 스탭들까지 싸잡아 비난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몇 번째 계단에서 어느 방향으로, 다시 몇 걸음을 더 걸어야 하는지, 언제 여자주인공을 쳐다보고 언제 손을 내밀어야 할지를 철저히 기억해서 움직였습니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제 바램대로 관객들은, 시각장애를 가진 성악가가 아닌 라보엠의 주인공 로돌포로 공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거죠. 저를 비난하던 비평가들도 “완벽한 공연이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제가 시력을 잃었을 때~ 두려움과 절망의 눈물을 흘리는데 필요한 시간은 꼭 한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덴 일주일이면 충분했지요. 자기 연민에 빠지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더 힘들답니다. 슬픔을 빨리 극복할수록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는 힘이 강해진다는 거~ 잊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Andrea Bocelli - Time To Say Goodbye - Live From Piazza Dei Cavalieri, Italy  ☞아래 청색주소를 클릭하여 보첼리의 연주실황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가로화면>  

https://m.youtube.com/watch?v=guRSl3n5nOc


제가 들은 주기도문 중 최고의 찬양입니다
안드레아 보첼리의
주기도문 찬양입니다

이어폰 끼고 스테레오로 들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취침 전이나 아침 기상할 때 들으면 더 은혜가 되는듯 합니다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47EDD12134675B804D100362FAB13DCA07F1&outKey=V125f31b044195bd2687ff50a90352df3e3d1de68c2176819526ef50a90352df3e3d1&width=500&height=4084E080DC194523C3DC.


흔들지 마라 찾지도 마라
        
세상 돌아가는 일에 엉켜서
복잡하게 살고 싶지 않다
그저 초야에 묻혀 묵묵히
나의 글만 쓰고 싶다

남의 집 살림에 감 나와라
콩 나와라 관섭하지 마라
그저 고운 심성으로 더욱더
마음을 정진하여 나의 길만
갈 뿐이다

나 살아가는데도
힘겹고 버거우니
찾지도 마라
초대도 마라
내가 갈 곳은 다 알아서
갈 것이니 초야에 묻혀
조용히 살아가는 날
흔들지 마라 찾지도 마라.



인생이란

먼 길을 도는 것입니다.
가까운 길이 있는데도
멀리 돌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사찰을 설계하 는 목장들은 대웅전 가는 길은 뒷뜰 돌듯이 사색하며 돌게  설계를 한다고 합니다.

동양사관은 집도 생명이다.
주인없는 집은 빨리 삭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시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생명 존중사상 이기에 고즈넉한 예순시점에는 다 이해가 되더이다.

뉴질랜드에는 작은 다리 하나만 놓으면 금방 건널 수 있는 강을 30분이나 돌아가는 길이 있다고 합니다.일부러 돌아 가도록 다리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돌아갑니다.
쉬운 것을 어려워하고 가까운 데 있는 것을 멀리에서 찾고 늦게 깨닫고 후회하고 아쉬워 합니다

실패와 성공, 기쁨과 슬픔도 모두 멀리 돌아가는 이야기입 니다. 혼자 너무 멀리 돈다고 애태우지 마십시오.

겪을 것은 겪어봐야 압니다. 멀리 돌아야 많이 보고 많이 보아 야 많이 압니다. 인생이란 먼길을 도는 것일 겁니다.

군계일학 수많은 닭들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닭이었으나 알고 보니 학이였다.
혹은 닭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
닭이란 해석으로 해석될 것입니다.

옛날에 "직장 삼국지"라는 드라마가 있었듯 직장은 소국
가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남의 단점을 찾으려는 교정자 가 되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하지만 오너라는 군주의 눈에 들기 위해 남의 단점을 군주 의 시선으로 찾으려는 사람은 누구를 대하든 나쁘게 보려 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나쁜 면을 닮게 됩니다.
남의 나쁜 면 을 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도 그 말을 듣게 됩니다.

열애도 본인이 시작하는 시점이 18살입니다. 18살에 만 나든 29살에 만나든 50살에 만나든 첫 사랑하는 시점이 곧 만나는 전지적 열애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남을 속이기 보다 더 자신을 속이 것이 더 힘들다 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미운점을 찾아야 셈법이 맞는지 도 모릅니다.
 
우리는 남의 좋은 면 아름다운 면을 보려고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진가를 찾으려 애써야 합니다. 
큰 사람 옆에 있었더니 중 사람은 되어 있더라고 말합니다.

그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고 싶을 만큼의 맑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간혹 가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흉내로 끝나는 결론 온전 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남의 좋은 점만을 찾다 보면 자신도 언젠가 그 사람을 닮 아 갑니다.
남의 좋은 점을 말하면 언젠가 자신도 좋은 말 을 듣게 됩니다. 
 
참 맑고 티없는 좋은 생각을 가지고 나머지 날들을 수 놓 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코끝이 찡해 지는 감격을 가 질 수 있는 맑은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든 그의 장점을 보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많이 칭찬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말을 할 때마다
좋은 말을 하고 그 말에 진실만 담는 예쁜 마음의 그릇이 내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가치는 사람다움이  아닐까요?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느냐, 얼마나 큰 명예를 가졌느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인간적으로 살았느냐
살아가는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하듯이 못배운 사람이 고향을 지키고 부모를 모신다고 하듯이

다음 소개하는 "누님"은 지으낸 것이 아니라
한때 세상을 울린 한편의 드라마같은 실제의 사건입니다

돈이 신이되고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람들의 심금울 울리는 '논픽션'이므로

자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한번쯤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봄이 어떨까요?


  누  님


​가난한 집안에
장녀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남의집 식모로 팔려가
몇푼 되지도 않은 돈을 받고 살다가 조금 머리가 커지자
봉제공장에서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죽어라고 일만 하던 누님이 계셨다.

한창 멋을 부릴
나이에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하나 사 쓰는 것도 아까워 안 사고
돈을 버는대로 고향집에 보내서 동생들 뒷바라지 했다.

​그 많은 먼지를
하얗게 머리에 뒤집어 쓰고
몸은 병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소처럼 일만 해서
동생 셋을 대학까지 보내서 제대로 키웠다.

​이 누나는
시집가는 것도 아까워 사랑하는 남자를 눈물로 보내기도 했지만
이를 악물고 감내하며 숙명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늙어 갔다.

​그러다 몸이
이상해서 약국에서 약으로 버티다 결국은 쓰러져 동료들이 업고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위암말기 라는 판정을 듣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술을 해서 위를 잘라내면 살수 있다고 했다.

​누나는 미국에
살고 있는 큰 동생에게 전화를 합니다.

"동생아 내가 수술을 해야하는데
3,000만원 정도 든 단다"

동생이 골프를 치다말고 말합니다.

"누나, 내가 3만불이 어딨어"

누나는
"알았다, 미안하다"

힘없이 전화를 끊습니다.

​둘째
동생에게 전화를 합니다.

둘째 동생은 변호사입니다.

"동생아,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네, 어떡하냐?"

둘째가 말합니다.

"누나 요즘 수입이 없어서 많이 힘드네" 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막내 동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사정얘기를 하자
막일을 하며 힘겹게 사는 동생이 부인과 함께 단숨에 뛰어 왔습니다.

"누나, 집 보증금을 빼왔어, 이걸로 수술 합시다"

누나는 막내의 사정을 빤히 알고 있기에 그냥 두 부부를 부둥켜 안고 울기만 합니다.

​수술하기 전날 밤
보호자 침대에서 잠이 든 올케를 바라보던 누나는
조심스레 옷을 갈아 입고 안개속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횡당보도에서 있던 누나는 자동차 불빛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렇게 누나는 한많은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맙니다.

꿈속에서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토닥이는 누나의 손길이 느껴져 놀라 깨어보니..

누나의 자리가 비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빈 침대위에 놓여진 편지를 봅니다.

몇 줄의 글이 눈에 들어옵니다.

"막내야, 올케야, 고맙다."

"죽어서도 너희들을
지켜주마..

내가 그나마 죽기 전에 보험을 들어 놓아서 이거라도 줄 수 있어서
참 다행 이구나"

참으로 기구한 운명입니다.

누나가 죽자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다른 두 동생들은 누나의
사망보험금이
상당하다는 걸 알고
막내를 협박 합니다.

"우리와 똑같이 나누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

"법적인 모든 것을 동원하겠다"

두 형수들과 함께
욕을 하며 막내 부부에게 위협을 가합니다.

결국은 법정다툼으로 갔습니다.

막내는 그냥 줘버릴까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나의 핏값을 두 형으로 부터 지키고 싶었던 막내는 결국은 소송을 시작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친구가 변론을 맡아 주기로
했습니다
몇 개월의 소송끝에 판결을 받습니다.

판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판결문을 읽어 내려 갑니다.

그리고 누나의 휴대폰에 저장된 문자를 읽어주자 두 형들은 두 말 하지않고
밖으로 나갑니다.

삶이 그렇더군요
친구의 우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곤궁에 처해 도움의 손길을 비칠때
그 사람의 본심이 드러납니다.

좋은 때 잘하는 것은
짐승이라도
잘 하는 겁니다.

자신에게 조금만 손해 간다 싶으면
외면 해버리는 게 인심입니다.

이렇게 불쌍하게
삶을 마감한
그 누님은 성자와 같은 삶을 살다가 그렇게 죽어 갔습니다!

​살아 있을 때
효를 다하고
의를 다하고
예를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어려울때 성심으로 대하는 참된 우정과
사랑을 베풀고 나눌 수 있어야 사람다운
사람입니다.

60~70년대
산업화를 이끌던 우리의 누나들, 형님들..

그리고 썩어 문드러져 가면서 밑거름이
되어주신 부모님 세대들에게
함부로 '꼰대'
라고 불러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극도의
이기주의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난득자형제
(難得者兄弟) :
형제는 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서로 의가 좋아야 한다.


동기일신(同氣一身) :
형제 자매는 한몸과 같음


의형의제(義兄宜弟) :
형제간에 우애가 좋음


절전지훈(折箭之訓) :
가는 화살도 여러개가 모이면 꺽기가 힘들 듯 여러 형제나 동료가 협력하면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때는 물론이고 돌아가신 뒤에도 형제간 우애가 으뜸 효도다.
특히 돌아가신 뒤에는 더욱더...


가정이 건전하면 만사가 형통하고, 몸이 화평하면
일이 잘된다. 라고 합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많은 세상이길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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