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의 좋은 글

♥️마지막 애국자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 ♥️

뉴우맨 2023. 5. 25. 23:58

👁뜨자마자
다 읽었습니다

아~!!"
마지막 애국자 박태준!

감동의 물결이 출렁입니다

요즘
정치인과 기업인들
그리고 젊은 자녀들
꼬~오  필독!
강추~~

♥️대한민국
마지막 애국자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 ♥️

1927년 경남 동래군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따라 6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
초중고교를 다녔고 와세다대 공대 2학년 재학 중
해방을 맞아 중퇴·귀국했다.

육사 6기로 임관한 그는 6.25 전쟁 당시 경기 포천
지역 1연대 중대장이었다.
군에서 충무무공훈장·화랑무공훈장을 받았고 육군대학 수석 졸업 후 최연소 육사 교무처장, 1군 참모장 등을 지냈다.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
    부(富)의 중심

34세이던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을 맡은 그는 이후 50년 동안 요직(要職)을 맡았다.
육군 소장 예편→대한중석 사장(3년)→포항종합제철 사장·회장(25년)·명예회장→민정당 대표·민자당 최고위원·자민련 총재·4선(選) 국회의원→국무총리….

누가 봐도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과 부(富)의 중심에서 누릴 수 있는 걸 다 누린
인생’의 전형이다.
흔히 부패 인사, 독재자 같은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그런데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지낸 좌파 진영 소설가인 조정래씨는 “박태준은 한국의 간디이다.
나는 그의 이름에 마하트마를 붙여 ‘마하트마 박’으로 부르고 싶다”고 했다,
(2011년 12월 17일
서울 현충원 영결식장 ).

한 사람의 일생이 ‘성(聖)스러운’이라는 뜻의 ‘마하트마(Mahatma)’로까지 칭송받는 것은 여간 일이 아니다. 박태준 회장(이하 청암으로 호칭)에게 어떤 남다른 측면이 있는 걸까?
통상대신(通商 大臣) 시절 포항제철을 방문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의 회고이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느낀 것은 종업원들이 너 나 없이 마음으로부터 박태준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도저히 표현할수 없는 감명을 거기서 받았다.”

◇용광로 같은 애국심과
   도덕성.

이는 청암이 자신의
좌우명(座右銘), 즉 ‘짧은
인생을 영원(永遠)히 조국에’에 철저해 탁월한 업무 능력과 강력한 도덕성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평가이다.

그는 실제로 1964년 12월 국영기업체인 대한중석 사장을 맡은지 1년 만에
만년적자(萬年赤字)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보통 4~5년 걸리는 종합제철소 건설 작업을 제철소 구경조차 한적 없는 38명과 함께 착공 3년 3개월만에 완공하여 마쳤다.

조업 첫 해인 1973년 포항제철은 매출액 1억달러
·순이익 1200만달러를 냈다
가동후 50년 가까이 적자였던 일본 동종 업계와 비교하면 ‘기적’적인 일이다.
포항제철은 세계 철강사에서 제철소 가동 첫해부터 이익을 낸 유일한 기업이다.

청암은 제철소 공기(工期) 단축을 위해 하루 24시간 작업을 지시해 놓고 자신도 매일 3~4시간 잠 자며 현장을 챙겼다.
1968년 포항제철 출범부터 1992년 광양제철소 2기 완공까지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포항 효자동 사택과 회사에서 지내 ‘효자사 주지스님’으로 불렸다.

그는 ‘솔선수범’하는 경영자인 동시에 ‘무사욕(無私慾)’의 리더였다.
피와 땀을 쏟아 창업하고
성장시킨 포스코에서 25년 만에 물러날 때, 그는 한 주의 공로주(功勞株)는커녕 퇴직금 1원도 거부했다. 1988년 포항제철 임직원
1만9419명에게 전체 발행 주식의 10%를 우리
사주(社株)로 배정했을 때도 같았다.

명예회장으로 복귀한 뒤
“노후를 생각해 조금이라도 스톡옵션을 받으시라”는 주변의 권유에 그는
“포항제철은 선조(先祖)의 피로 세운 회사이다.
공적인 일을 할때 사욕(私慾)을 갖지 말라!”고 일갈했다.

◇주식·퇴직금 ‘0원’...
73세에 전셋살이

“청암의 도덕성은 무서울 정도였다.
그분의 리더십 근간은
청렴결백(淸廉潔白)이었다”(황경로·포스코 2대 회장)는 증언 그대로이다.
인사 청탁과 금품 주고받기가 난무하던 1956년 11월, 그는 세칭 ‘노른자위’ 자리인 국방부 인사과장이 됐다.
그러나 청암은 유혹 및 압력과 싸우다가 10여개월만에 25사단 참모장 근무를 자원해 갔다.

포항제철 사장 시절 아버지가 “문중 사람들을 좀 써주면 안되겠냐”고 하자, 청암은 그대로 방을 나와 회사로 돌아갔다.
1962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준 하사금을 합쳐 서울 북아현동에 집을 마련하기까지 그는 8년 새 15번 전셋집을 전전했다. 38년간 살던 집을 2000년에 팔아 생긴 돈 14억 5000만원 중 10억원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고 73세에
다시 전세살이를 했다.

그가 사후에 남긴 재산은
전무(全無)했고, 말년에
생활비와 병원비는 자녀
5명(4녀 1남)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청암을 다룬 평전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
의 저자인 이대환 작가는
이렇게 평가한다.

“단군 이래 최대 프로젝트
였던 포항제철 25년 동안
박태준은 한 푼의 비자금도 만들지 않았다.
이는 누구도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20세기 후반 한국사에 길이 기록될 업적이다.
이거야말로 박태준의 이름을 포철 용광로만큼이나 칭송(稱頌)해야 할 일이다.”

◇“천하는 개인 것이
     아니다”...‘멸사봉공’

‘천하위공(天下爲公)·천하는 개인의 사사로운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이[公]의것).
이 한 마디는 청암의 생애를 관통하는 또다른 정신적 기둥이다.

1970년 포항제철에 사상
처음 6000만원의 보험회사 리베이트 자금이 생겼을 때이다.
청암이 이 돈을 청와대로 들고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포항제철의 예산에서 빼낸 것이 아니고 공돈이니
통치 자금에 보태 쓰시라”고 건네자, 박 대통령은
“임자 마음대로 써라”며 돌려주었다.

청암은 그러나 이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거기에다 회삿돈을 더 보태 임직원 자녀들을 위한 제철장학회를 세웠다.
이렇게 세운 학교만 포항과 광양에
모두 27개이다.
한국 기업 최초로 임직원 자녀 대상 전액 대학 장학금 제도와 한국 최초의 연구 중심대학(포항공대)은 이렇게 탄생했다.

국영기업 최고경영자(CEO)로 30여년 재임하는 동안, 청암에게는 고가(高價)의 설비 구매나 원료 도입 결정을 둘러싼 정치 자금 협조와 인사 청탁, 리베이트 요청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불법 뇌물인 정치 자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정치 무풍지대’를 고수했다.
이는 최고 권력자인 박정희 대통령의 무한 신뢰에다가 청암의 ‘천하위공’ 정신이
어우러진 덕분이다.

청암이 현실과 적당히 타협했다면, 포항제철은 부실 회사로 추락하거나 적자를 걱정하는 2~3류 기업이 됐을 것이다.
1965년 한일(韓日) 국교
정상화를 하면서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對日)
청구권 자금 일부로 세운 ‘국민 기업’이라는 칭호도 퇴색했을 게 분명하다,

장교 시절 당번병을 쓰지
않았던 청암은 통행금지를 지키다가 첫 아이를 잃었다. 그는 멸사봉공(滅私奉公)과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입으로만 외치지 않고 국제 가격보다 20~40% 저렴하게 양질의 철강 제품을 국내
기업들에 공급하면서 흑자 행진을 이어가는
‘제철보국(製鐵報國) 경영’에 목숨 걸었다.

그는 회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는 “우리가 실패하면 조상에게 엄청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면 모두 우향우(右向右)서 영일만 바다에 투신하자”고 외쳤다. 불굴의 정신력으로 그때마다새로운 돌파구를 열어갔다.

1979년 박정희 서거후 청암은 “포항제철을 정치 외풍에서 지키기 위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놨다.
1990년 3당 합당 후 민정계의 수장(首長·최고위원)이 된 그는 김영삼 대통령 후보와의 불화로 1992년 말 민자당 최고위원·포항제철 회장·국회의원직에서 모두 물러났다.

소설가 조정래씨는 다른 추도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너나 없이 돈에 홀려 정신 잃은 세상에서 박태준의 길을 따라가기란 너무 어렵고, 어쩌면 그 분은 이 시대에 마지막 애국자인지 모른다. (중략) 정직·청렴한 그 분을 바로 아는 것은 우리들의 삶을 바르게 세우는 길이다.”

◇성숙한 일본관...
지일과 용일`극일
(知日과 用日·克日)

청암이 남다른 세 번째 측면은 성숙한 대일(對日) 자세이다.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백성’
으로서 일본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그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 두 개가 있다.

이야마 북중학교 1학년때 교내 수영대회에서 1등을 했지만 ‘조선인’이란 이유로 일본인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우승을 빼앗긴 일과 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도쿄 시내에 미군의 폭탄이 쏟아지던 날 방공호에서 겪은 일이다,

“그때 방공호는 질서가 정연했다.
노인들, 특히 할머니들이 나섰다.
‘젊은이는 안으로 들어가라. 위험한 곳은 우리가 막는다. 왜 책을 들고 오지 않았느냐?
젊은이는 책을 펴고 공부해라.’ 방공호 입구에 천막이 쳐지고 젊은이가 모인 제일 안쪽엔 두개의 촛불이 켜졌다."

청암은 “1등을 뺐겼을 때 가슴 속이 끓었지만 참고
다스렸다”며 “방공호에서
할머니의 질책을 들었을 땐 식민지 청년으로서
고국(故國)에 대한 책임감에 몸서리쳤다”고 했다.
그는 일본이 준 분노는 참고, 감동은 받아들여 조국 재건을 위한 동력으로 삼았다.

일본에 대한 그의
진면목(眞面目)은 포항제철 건설 자금 마련을 위한 협상에서 드러났다.
박정희 정부는 1965년부터 종합제철소 건설을 추진했고, 이듬해 11월 미국·영국·독일 등 5개국 8개 회사
연합체인 대한(對韓)
국제제철차관단(KISA·Korea International Steel Associates)이 발족했다.

KISA는 그러나 1969년
상반기 “한국에서 종합제철소 건설은 채산성이 없다”며 ‘최종(最終) 불가(不可)’
결론을 내리고 붕괴했다.
세계은행(IBRD)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제철소 건립 자금을 모을 방법이 없는
고립무원(孤立無援) 처지가 됐다.

여기서 청암은 ‘농림수산업 지원 용도’로 정해져 있는 대일(對日) 청구권 자금을 포항제철 건설 자금으로
일부 전용(轉用)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자신이 ‘해결사’로 나섰다.
이 제안에 완강하게 반대하던 오히라 마사요시
대장상(大藏相·우리나라의 기획재정부 장관)을 1969년 8월 1주일 동안 세 차례 만났다.

청암은 일본 정부간행물
보관소를 찾아샅샅이 뒤져 일본 사례를 분석한 뒤
“한국에 제철소를 지으면 일본 안보에 큰 도움된다”는 논리를 설파해 설득해 냈다.

전 세계가 하나같이 “한국에서 제철 산업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할 때, “난국에 빠진 조국을 구하겠다”는 청암의 순정하고 강렬한 애국심이 일본 지도층을 감복시킨 것이다.
그의 완벽한 일본어와 일본인의 문화적 특성과 심리를 꿰뚫는 실력도 이를 뒷받침했다.

당시 그를 만났던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는
“나는 박태준의 단호함에 너무 놀랐고, 그래서 당신
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감정적인 반일(反日) 데모가 끊이지 않던 1960~70년대, 청암은 “일본을 알고
일본을 활용해 일본을 극복하자”는 ‘지일(知日)·용일(用日)·극일(克日)’의 3단계 일본관을 주창했다.
청암은 포항제철의 ‘스승’이던 신일본제철을 1990년대 추월해 그 타당성을 증명해 냈다.

불굴의 용기와 투지로 청암이 이뤄낸 한·일(韓日)의 협력 모델은 대한민국의 진정한 산업화와 선진화를 추동시킨 출발점이었다.
현해탄(玄海灘·대한해협) 양쪽에 자유민주·시장경제라는 동일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국은 일본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고도성장을
질주한 것이다.

◇“후세 경영자들에게
   살아있는 교본”

1978년 중국의 덩샤오핑이 이나야마 요시히로
신일본제철 회장을 만나
“중국에도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하자, 요시히로 회장은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습니까”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이 일화는 박태준이 한국을 넘어 최소한 아시아적 인물임을 보여준것이다.

그가 세우고 이끈 포항제철은 그의 생전에 품질 경쟁력 세계 1위 철강사가 됐고,
양적으로도 1975년 세계 46위에서 3위(1989년),
1위(1997년)로급부상했다.
그가 없었다면, 한국 조선·자동차·기계·건설 산업의
성장과 대한민국의 세계 경제대국으로 도약은 한낱 ‘꿈’에 그쳤을지 모른다.

철강 불모지라는 ‘절대 절망’에 좌절하지 않고 ‘세계 1등’
과 ‘초격차 경영’을 선구적으로 이뤄낸 박태준은 “후세의 경영자들을 위한 살아있는 교본”(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이다.
그는 1977년 8월 상당한
자금을 들여 공정률 80%에 달하던 건물의 부실(不實)을 발견하고 서슴없이 폭파 명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조국의 백년대계가 여기서 출발한다.
이것은 폭파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기폭제다”라고 했다.

◇“현장의 선비”...한국 리더
     들의 ‘롤 모델’

청암에게서 양보할수 없는 기준은 선조들의 핏값과 후손들의 미래라는 대의(大義)였다.
그렇기에 그는 어떠한 부실이나 부정(不正)·불의(不義)와 거래하거나 눈 감기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의 지적이다.

“한국의 저명 인사들은 모두 강당에서의 선비이고, 책 속의 선비, 말 속의 선비였다. 그러나 박태준은 지(志)와 의(義), 그리고 렴(廉)과 애(愛)를 행동으로 실천한 ‘현장의 선비’이다.”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돈에 대한 집착과 사익(私益) 추구가 심한 한국에서 청암은
국민의 사표(師表)이자,
리더들의 롤 모델(role model)일 수 있다.
그가 스스로 평생 붙잡아 온 4가지 화두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①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②절대 절망은 없다
③어느 분야든 세계 1등이되자
④10년 후를 내다보라

2023년 올해는 마침 청암이 이 땅을 떠난 지 12년, 우리나라 최초인 포항제철
고로(高爐·거대한 용광로)에서 쇳물을 처음 쏟아낸 지 반세기(半世紀)를 맞는 해이다.
위대한 애국자였든 청암의
혼을 애도하면서💜~~

이런 친구
https://tv.kakao.com/v/304752216


아침을지혜롭게여는50가지이야기
https://m.blog.naver.com/potoi/220943048240


감동의 서울대 생활수기
당선작
https://m.blog.daum.net/swkor624/1806?category=0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오만이/묵고놀기 연구소-

 중학교 1학년 도덕시간에 `소파`선생께서 칠판에 사람 인(人)자 여섯 개를 써놓고(人人人人人人)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있느냐고 물었다. 할 말 잃은 우리 모두는 칠판만 쳐다보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사람아, 사람아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풀이를 하셨다. 맹자가 `바르지 못한 사람이 남을 바르게 할 수는 없다.`고 했으니, 요즘 우리사회에 꼭 맞는 말인 것 같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쉽지는 않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모든 길은 돈으로 통한다. 돈으로 안되는 게 없다. 돈으로 권력을 사고, 권력 사면 그것으로 돈을 긁어모은다. 권력만 있으면 사람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중학생에게 50억을 줄 테니 감옥에서 10년 살 수 있겠냐고 묻자 절반 이상이 그러겠다고 답했단다. 어쩌면 현명한 대답일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있다. 의사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돈 벌기에 의사 직업이 최고다. 공과대학 출신이 과학자의 길을 버리고 의과대학으로 진학한다. 이공계만 졸업하면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으니 의사되기 한결 쉬워졌다.

 얼마 전 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에 내과 전문직으로 선발된 60대 의사가 연봉 3억6천만 원을 마다하고 딴 곳으로 가버렸단다. 대기업 부장급 연봉이 1억 원 정도이고, 60세가 되면 퇴직을 해야 하는 현실인데, 의사들 해도 해도 너무한다.

 현실이 이러하니 우수한 인재들이 너도나도 의과대학으로 몰리는 현상은 자연스럽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의대입시반`학원이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초등 4학년부터 선발하여 중학생 때 고교과정을 전부 마친다는데 6학년은 늦다고 돌려보낸단다. 중소도시 포항에도 초등 의대반 학부모 설명회에 줄이 이어지고, 경쟁률이 10:1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러니 정치권에서도 의과대학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부모의 과다 욕심도 문제다.

 자녀를 의사로 만들고 싶은 욕심에 풍비박산된 가정이 있으니, 바로 조국(曺國)이다. 비록 사법고시 패스는 못했으나 훤칠한 키, 잘 생긴 용모에 빼어난 말솜씨, 서울대 법대 교수라 뭇사람의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가 안철수처럼 진흙탕에서 개들이 싸우는 정치판에 끼어든 것이 불행의 시작이라 나는 생각한다.

 평생 학자로 남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는 관운이 좋아 청와대 민정수석에 법무부 장관에까지 이르렀다. 청렴하다는 사람도 권력의 맛을 보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에 둔감해지고, 자신의 목표와 욕구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권력에 맛들이면 마약중독과 비슷한 현상이 생긴다. 조국은 자녀 입시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3년을 끌다 1심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아들과 딸의 입시비리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나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법정 구속은 되지 않았다. 역시 세상은 끼리끼리 논다. 그의 부인 정경심 교수는 딸의 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해 부적절한 논문 저자 등재, 체험활동 확인서, 인턴십 확인서, 표창장 등을 위조하거나 허위로 작성 제출하여 합격시켰다.

 정경심 1심 재판부가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던 조국 가족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가했다.” 기본 상식을 갖고 법을 존중하는 평범한 국민들은 여전히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 조국 가족으로부터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나도 그렇다.
 
 정경심에게 실형 4년이 선고되자 TBS뉴스공장 김어준 진행자가 `죽어봐라 이 새끼들아 이런 식의 판결`이라며 격양된 비난이 쏟아졌고, 급기야 이 사건 판사들을 탄핵하자는 청와대 청원 동의가 순식간에 30만명을 돌파했다. 여기서 내가 궁금한 것은 사법부에서 판결났으면 범죄 사실은 인정되는 게 아닌가?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엄마는 감옥에 있는데도 딸은 “나는 떳떳하다,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니 정말인가? 아버지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홍보하고 북 콘서트까지 열고 있다. 이 자리에서 “아버지는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라고 말해 청중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고 한다. 도대체 저 가정은 어떤 가정일까? 대법원 판결까지 질질 끌다 정권이 바뀌면 무죄가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인가?

 옛날에 소를 훔친 도둑에게 사또가 추궁하자, 소를 훔친 것이 아니라 고삐를 잡고 가는데 소가 따라 왔다 말하니 무죄가 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예로, 칼로 살인한 범죄자가 주범은 칼을 만든 사람이라고 우기면 감형이 되는 지금과 다를 바 없다.

 어디 이뿐이랴, 나는 직장생활 30년에 2억도 안 되는 퇴직금을 받았는데, 곽상도 아들은 화천대유에서 6년을 다니고 50억을 받았다. 뇌물임을 만천하가 아는데도 그의 애비는 무죄로 풀려나와 당당히 걸어 다닌다. 나는 이런 인간들과 한 나라에서 같이 산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
 

 나는 돈과 권력을 가지기 이전에 사람이 되는 인성교육이 절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은 오직 출세와 돈의 노예가 되는 공부를 최우선으로 한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이기려면 반드시 지식이라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다만 먼저 사람됨의 근본을 세우라는 것이다.

 인문학이 필요하다. 인문학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 궁리하고, 인간을 둘러싼 대상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깨달음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조선 5백 년 동안 중국에 질질 끌려 다니고, 왜구에 시달리는 풍전등화였지만 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선비들의 철학정치 덕이다. 물질을 지배하는 것이 정신이다. 모든 사람은 대동의 세상에 살아야 한다는 평등의식이 외우내환의 극한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돈봉투 때문에 야단법석이다. `돈은 받았지만 대가성은 없었다.`로 결론 날 게 뻔하다. 김남국이는 60억을 숨겨둔 채 돈이 없어 떨어진 운동화 신고 다닌다는 가난뱅이 코스프레로 후원금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런 자가 변호사 출신이다. 국민들 다수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하면 중우정치로 가게 된다. 배운 사람들이 어리석은 국민을 샛길로 새도록 만든다. 돈이 우리의 신(神) 임을 그들은 외치고 다닌다.

 이런 자들에게 나는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젤렌스키는 원래 화상참석 예정이었다. 그런데 일본으로 왔다. 왜? 유럽정상들은 유럽에서 만날 수 있는 상대다. 일본의 기시다는 우크라이나에서 만났었다.

젤렌스키가 제일 먼저 도움을 요청한 국가가 한국이었다. 그럼에도 젤렌스키의 요청은 무시되었고 아무도 주목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격을 견디어 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자유진영도 대열을 갖추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푸틴의 선택지는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선택지라 함은 푸틴이 정치적 생존을 의미한다. 서방자유진영이 어떻게 결심하느냐의 문제만 남은 듯하다. 이번 G7정상회담은 2차세계대전 후 전후 질서를 논의했던 얄타회담의 향기가 난다. 얄타와 같은 구체적 산출물은 없지만 러우 전쟁후 세계질서를 준비한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이런 G7정상회담에 젤렌스키는 직접 히로시마로 날아 왔다. 그리고 윤대통령과의 회담을 제안했고 윤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런 움직임 이전에 자신의 부인을 한국으로 보냈고 윤대통령을 만나게 했다. 무언가 치밀하게 준비된 기획이 있는 느낌을 받는다.

젤렌스키의 뒷배는 미국이다. 미국은 세계전략상 이번 기회에 러시아를 팔다리를 완전히 부러뜨릴 작정이다. 푸틴은 보내고 적어도 러시아를 유럽의 그저 그런 국가정도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생각이다.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항전의지는 미국의 對러시아 전략 성공의 핵심요소다. 손도 안대고 코를 푸는 격이다.

미국은 역시 노련했다. 유럽이 전방위적으로 나서도록 압력도 가했고 시간이 무르익도록 기다릴 줄도 알았다. 또한 이런 對러시아 전략을 對중국 전략과 정교하게 엮어서 전개하는 노련함을 선보이고 있다. 푸틴과 시진핑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지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이런 미국 외교의 노련함을 더욱 빛나게 하는 파트너가 한국이라는 위치이고 윤대통령은 이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 들어가 앉았다. 미국은 더할 나위 없는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바이든 할아버지의 표정을 봐도 미국의 행복함이 느껴진다.

바이든이 노인 특유의 허둥거리는 모습으로 모든 정상들이 다 보는 앞에서 윤대통령에게 달려가 윤대통령에게 귓속말을 나누는 장면은 고도의 정치적 의도를 내포하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젤렌스키가 일본으로 오는 일정은 미국과 협의가 되었을 것이다. 젤렌스키와 윤대통령의 회담도 당연히 양쪽 다 미국과 협의한 결과물이다라고 보아야 한다.

한편의 드라마 같지 않은가! 한국이 세계지정학 게임에서 엑스트라가 아니라 적어도 주연급의 조연으로 격상이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 말이다. 얄타 회담에서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나라가 쪼개지는 약소국에서 세계지정학 게임의 주요 참가자로의 변화! 정말 놀랍고 감격스로운 역사가 아닌가!

얄타 회담이 생산한 한반도의 좌파 기생충 세력들은 이러한 놀라운 반전의 역사적 장면들을 읽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죽창이나 들고 괴담이나 퍼뜨리는 종자들에게서 그런 독해력 더 나아가 통찰력까지 기대한다는 것은 헛된 기대다.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신창용ㆍ언론인)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오만이/묵고놀기 연구소-

 중학교 1학년 도덕시간에 `소파`선생께서 칠판에 사람 인(人)자 여섯 개를 써놓고(人人人人人人)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있느냐고 물었다. 할 말 잃은 우리 모두는 칠판만 쳐다보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사람아, 사람아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풀이를 하셨다. 맹자가 `바르지 못한 사람이 남을 바르게 할 수는 없다.`고 했으니, 요즘 우리사회에 꼭 맞는 말인 것 같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쉽지는 않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모든 길은 돈으로 통한다. 돈으로 안되는 게 없다. 돈으로 권력을 사고, 권력 사면 그것으로 돈을 긁어모은다. 권력만 있으면 사람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중학생에게 50억을 줄 테니 감옥에서 10년 살 수 있겠냐고 묻자 절반 이상이 그러겠다고 답했단다. 어쩌면 현명한 대답일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있다. 의사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돈 벌기에 의사 직업이 최고다. 공과대학 출신이 과학자의 길을 버리고 의과대학으로 진학한다. 이공계만 졸업하면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으니 의사되기 한결 쉬워졌다.

 얼마 전 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에 내과 전문직으로 선발된 60대 의사가 연봉 3억6천만 원을 마다하고 딴 곳으로 가버렸단다. 대기업 부장급 연봉이 1억 원 정도이고, 60세가 되면 퇴직을 해야 하는 현실인데, 의사들 해도 해도 너무한다.

 현실이 이러하니 우수한 인재들이 너도나도 의과대학으로 몰리는 현상은 자연스럽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의대입시반`학원이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초등 4학년부터 선발하여 중학생 때 고교과정을 전부 마친다는데 6학년은 늦다고 돌려보낸단다. 중소도시 포항에도 초등 의대반 학부모 설명회에 줄이 이어지고, 경쟁률이 10:1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러니 정치권에서도 의과대학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부모의 과다 욕심도 문제다.

 자녀를 의사로 만들고 싶은 욕심에 풍비박산된 가정이 있으니, 바로 조국(曺國)이다. 비록 사법고시 패스는 못했으나 훤칠한 키, 잘 생긴 용모에 빼어난 말솜씨, 서울대 법대 교수라 뭇사람의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가 안철수처럼 진흙탕에서 개들이 싸우는 정치판에 끼어든 것이 불행의 시작이라 나는 생각한다.

 평생 학자로 남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는 관운이 좋아 청와대 민정수석에 법무부 장관에까지 이르렀다. 청렴하다는 사람도 권력의 맛을 보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에 둔감해지고, 자신의 목표와 욕구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권력에 맛들이면 마약중독과 비슷한 현상이 생긴다. 조국은 자녀 입시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3년을 끌다 1심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아들과 딸의 입시비리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나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법정 구속은 되지 않았다. 역시 세상은 끼리끼리 논다. 그의 부인 정경심 교수는 딸의 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해 부적절한 논문 저자 등재, 체험활동 확인서, 인턴십 확인서, 표창장 등을 위조하거나 허위로 작성 제출하여 합격시켰다.

 정경심 1심 재판부가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던 조국 가족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가했다.” 기본 상식을 갖고 법을 존중하는 평범한 국민들은 여전히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 조국 가족으로부터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나도 그렇다.
 
 정경심에게 실형 4년이 선고되자 TBS뉴스공장 김어준 진행자가 `죽어봐라 이 새끼들아 이런 식의 판결`이라며 격양된 비난이 쏟아졌고, 급기야 이 사건 판사들을 탄핵하자는 청와대 청원 동의가 순식간에 30만명을 돌파했다. 여기서 내가 궁금한 것은 사법부에서 판결났으면 범죄 사실은 인정되는 게 아닌가?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엄마는 감옥에 있는데도 딸은 “나는 떳떳하다,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니 정말인가? 아버지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홍보하고 북 콘서트까지 열고 있다. 이 자리에서 “아버지는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라고 말해 청중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고 한다. 도대체 저 가정은 어떤 가정일까? 대법원 판결까지 질질 끌다 정권이 바뀌면 무죄가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인가?

 옛날에 소를 훔친 도둑에게 사또가 추궁하자, 소를 훔친 것이 아니라 고삐를 잡고 가는데 소가 따라 왔다 말하니 무죄가 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예로, 칼로 살인한 범죄자가 주범은 칼을 만든 사람이라고 우기면 감형이 되는 지금과 다를 바 없다.

 어디 이뿐이랴, 나는 직장생활 30년에 2억도 안 되는 퇴직금을 받았는데, 곽상도 아들은 화천대유에서 6년을 다니고 50억을 받았다. 뇌물임을 만천하가 아는데도 그의 애비는 무죄로 풀려나와 당당히 걸어 다닌다. 나는 이런 인간들과 한 나라에서 같이 산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
 

 나는 돈과 권력을 가지기 이전에 사람이 되는 인성교육이 절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은 오직 출세와 돈의 노예가 되는 공부를 최우선으로 한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이기려면 반드시 지식이라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다만 먼저 사람됨의 근본을 세우라는 것이다.

 인문학이 필요하다. 인문학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 궁리하고, 인간을 둘러싼 대상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깨달음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조선 5백 년 동안 중국에 질질 끌려 다니고, 왜구에 시달리는 풍전등화였지만 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선비들의 철학정치 덕이다. 물질을 지배하는 것이 정신이다. 모든 사람은 대동의 세상에 살아야 한다는 평등의식이 외우내환의 극한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돈봉투 때문에 야단법석이다. `돈은 받았지만 대가성은 없었다.`로 결론 날 게 뻔하다. 김남국이는 60억을 숨겨둔 채 돈이 없어 떨어진 운동화 신고 다닌다는 가난뱅이 코스프레로 후원금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런 자가 변호사 출신이다. 국민들 다수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하면 중우정치로 가게 된다. 배운 사람들이 어리석은 국민을 샛길로 새도록 만든다. 돈이 우리의 신(神) 임을 그들은 외치고 다닌다.

 이런 자들에게 나는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카톡의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보 시요 저기요  (1) 2023.05.27
♡ 초 심 ♡  (2) 2023.05.27
아침을 지혜롭게  (3) 2023.05.25
★100세 삶을 즐겨라★  (3) 2023.05.25
두가지 종류의 싸움  (3) 2023.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