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서도,
사랑 밖에 서 있었다]
[ 글 / 박 형 서 ]
1.
사랑을 지키려는 서원의 기도 속에
감동의 언약으로 손잡고 새우는 밤,
오랜시간 침묵하며 가슴에 묻은 채
약속의 말조차 남기지 말기로 하자
헛된 맹세마저도 서로 전하지 말자
세월 안에 수많은 부딪힘이 있어도
영혼 속의 깊은 곳에 자리한 사랑,
다가서면 멀어짐이 사랑인 까닭에
사랑하면서도 사랑 밖에 서있었다
그 사랑의 외로움에 마음이 아파도
애증의 기억으로 가슴 속에 묻으며
미움에 갇히면 이미 사랑일 수없어
스스로 저려오는 마음을 다스린다
언제나 마음 하늘에 샛별로 떠 있는
사랑의 환상을 아름답게 간직할 뿐
네 가슴 밭에 굵은 뿌리를 내리면서
한 그루 나목으로 말없이 남으련다
오랜 세월, 너만을 향한 기다림으로
바람처럼 떠났다 바람으로 돌아오는
서글픔의 사랑이 지치고 힘겨워서
그 사랑을 감추고 동면을 예비한다
하얀 커튼이 내려진 네 창문 밖에서
침묵의 나무 곁을 맴돌며 서성인다
너를 사랑하면서 사랑 밖에 있는건
강물이 흘러, 건널 수없는 까닭이다
너에게 바람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다가서면 어디론가 사라질 것같아서
숨차도록 달려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숲 속길에 머물며 가쁜 숨을 내쉰다
왜, 혼자 쓸쓸한 사랑에 머무는 걸까
그리움의 세월을 문득 뒤돌아 보니
돌아서서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가는
가을처럼 가슴 시린 타인들 뿐이다
서랍에 가득한 너를 향한 독백들은
촛불로 밝혀진 사랑으로 남으련만
스쳐가는 세월 속의 수많은 사연은
불어온 바람에 낙엽처럼 흩날린다
아프고 쓰리니까, 더 깊은 사랑이다
고여든 눈물을 목으로만 삼키면서
너를 사랑하면서 사랑 밖에 있는 건,
그 언약의 사랑을 이루기 위함이다
2.
몰래 숨어 흘리는, 숨죽인 눈물처럼
젖은 눈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것도
외줄기 사랑을 간직했기 때문이다
알알이 맺혀진 아픈 사연의 안개꽃,
하아얀 안개꽃을 너에게 전하련만
오히려 전한 꽃은 나에게 돌아온다
네가 전한 안개꽃이 서재에 남아서
촛불과 어우러진 사랑의 추상화로
내 손의 따스함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의 등불이 아늑한 빛으로 남아
내 안에 쌓이는 어둠을 지워나감은
신비롭게 감추어진 사랑의 힘이다
나무 숲속을 서성이던 사랑 밖에서
내 사랑을 잠재우고 찾아간 바닷가
그 바다의 안개인 해무가 걷혀지고
내 바다, 가슴벽엔 국화가 피어났다
짙은 해무가 걷히면 해국이 숨쉬고
강가의 안개가 서서히 빛에 걷히면
안개꽃과 국화가 서로 함께 피었다
바다의 파도에 시달린, 한 송이 해국
사랑 밖에 서 있었던 사랑의 꽃이다
그 오랜 세월 사랑 밖에 머문 사랑은
안개꽃과 바다의 해국으로 간직된다
안개꽃과 해국의 어우러짐 속에서
사랑의 사연과 기다림만을 품은 채
떠났지만 전혀 떠나지 못한 사랑은
밤새 사랑 밖에 머문 외로움 속에서
가슴의 들녘에 야생화를 피워냈다
그 모든 환상의 실루엣이 모여들어
포물선의 흐름을 타고 떨어져 내린
밤하늘의 유성마저 꽃으로 피는 건
영혼속의 사랑으로 승화된 까닭이다
흐르는 세월 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목이 전하는 낮은 음성을 듣는 건
사랑하면서 사랑 밖에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며 사랑 밖에 머무는 사랑으로
수많은 계절이 바뀌어도 간직된 사랑,
맑은 사랑은 이슬로 맺혀지고 있었다
(((묘셔온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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