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모음

낙엽에 관한 시모음

뉴우맨 2021. 11. 21. 22:58

낙엽에 관한 시모음 17)

 

머리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   /시앓이 김정석

 

때가 되었어

떠난다

미련이 없고

후회가 없어

홀가분하게 지는 잎

 

머리에 떨어진 잎이

말했어

버리라고

비우라고

하나씩 정리하라고

 

 

낙 엽            /권영선

 

그대는 죽은 생명이 아닙니다.

발끝에 채이며 뒤집히는 간지러움

눈을 마주하면 그윽한 눈빛

귀를 기울이면 따뜻한 속삭임

가슴을 마주하면 발가벗은 언어

이렇게라도 나의 곁에 머물고 픈

그대의 입맞춤 진실입니다.

 

그대의 모습이 이별은 아닙니다.

못 다한 말, 정녕 못 다한 내 다짐

이 가을, 오늘을 접을 수 없습니다.

엊그제 불타던 가을 산 그대 가슴이

바스락바스락 아무리 쌀쌀하게 외면해도

그대 가슴의 진실은 나를 손짓함을 압니다.

 

그대 추억이라 말해도

우리의 사랑은 오늘도 진행 중입니다.

하얀 붕대에 감긴 내 손톱의 상처가 덧날지라도

내 사랑의 뿌리는 언 땅도 두렵지 않습니다.

 

 

낙엽은 또 그렇게 쌓이고   /이재현

 

그대 향한 내 그리움

마디마디 노을이 타오르면

 

그대 계신 곳에도

눈물처럼 가을빛도

곱게 번져 흐를 테지요

 

갈대 숲을 지나 온

상처 난 바람소리 맴돌아 간

 

그대 머물던 자리로

뜨거운 가슴 비우며

낙엽은 또 그렇게 쌓이고

 

가을로 난 오솔길엔

이슬 머금고 먼저 지나간

 

연인들의 자줏빛 추억이

옷깃으로 곱게 파고 들면

이 가슴 속 깊은 곳으로

 

외로움인양 하여

그대 작은 발자국 마다

내 한숨도 고이겠지요

 

풀벌레 울음소리 가득히

수(繡)놓는 진자줏빛 가을밤을

 

그대

그리움에 쓰다 둔 편지

여백 위로 낙엽은 쌓이고

 

어쩌면

그대 향기인양

달빛이 흘러 넘칩니다

 

 

낙엽의 그날       /이원문

 

곤두박질의 낙엽들

단풍의 그 며칠 이 시간이 지우나

드러나는 나뭇가지 앙상하니 쓸쓸하고

떨어진 낙엽 발에 밟혀 깨어진다

 

구르다 머물고 또 구르고

쌓여도 바람 불면 다시 구를 낙엽들

이리 저리 굴러 굴러

어느 곳에 쌓일까

 

굴리고 모으는 바람

멎지 않는그 바람은 알고 있을까

비라도 내리면 추워 어쩌나

낙엽의 그 세월 모두가 가엾다

 

 

낙엽(落葉)       /박인걸

 

늦가을 비가

나뭇가지사이를 스칠 때

가까스로 붙어 있던 잎들이

낙엽 되어 곤두박질친다.

 

빗방울의 중력(重力)에도

버티려던 손을 놓치고

기댈 데 없는 허공으로

몸을 던지고 있다.

 

창백한 안색에

오들오들 떨던 때부터

이런 시간이 올 것을

나는 예감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이야기들도

한낱 부질없는 꿈결

다시는 못 올 곳으로 떠나는

마지막 뒷모습이 애처롭다.

 

 

낙엽은 나비가 되고     /홍문표

 

나비는 가난한 불꽃

새벽이슬

비탈진 언덕의 개나리

빙하기의 공룡 발자국

여자의 아린 눈물

가시 돋친 흑장미

에덴의 처음남자

 

 

낙엽         /양해선

온 몸 불사르던 열정
겨울 문턱에 서면
복받치는 서글픔으로
편지를 쓴다
한 장
또 한 장
셀 수도 없이 우수수 ---

지나 온 날들
나뒹굴고 찬바람에 휩쓸려
등지고 가는 세월

수레 멈춰 놓고
주섬주섬 주워 모아
불을 지핀다
구겨진 사연
짓밟힌 서러움
지우지 못한 미련
연기가 되어, 재가 되어
사라지고

뒤따라오던 세월
빈 수레를 챙겨
겨울로 끌고 간다

 

 

낙엽       /이일영(李逸永)

가을 끝 가지마다
숙명의 품 떠나는
마른 잎들의 바람 여행

여름내 마음에 새긴 노을로
붉디 붉은 열정과 샛노란 추억을
배낭에 짊어진다

파란 하늘 삼킨 코스모스와
눈인사하고
떠나가는 영혼을 하얗게 에워싼
국화행렬에 손짓하고
가을앓는 시인의 어깨에 기대어
위로의 몸짓 바삭인다

어느 눈쌓인 산골마을
한평생 지펴온 삶의 아궁이에
겨우내 타오르리
슈베르트의 나그네로...

 

 

낙엽의 마지막 독백      /서경원

 

목이 마르다

누가 내게 한 모금의 물을 다오

 

가슴이 탄다

누가 내게 한 잔의 술을 다오

혈관 속 붉은 피마저 말라 버렸으니

 

그대 한 치의 예리한 혀로

기어이 내 목숨줄 끊는구나

이럴 수가!

그대의 말 한 마디가

나를 죽이고 살리는 무기였다니

 

회색 아스팔트 위 내동댕이쳐진

시체보다 가벼운 영혼

 

아!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누가 내게 길을 가르쳐 다오.

 

 

낙엽의 힘 1       /이상열

 

낙엽이 지는 것은

나뭇잎이 쇠잔해서가 아니라

새 봄,

푸른 세상을 향해

솟구쳐 오르기 위한 몸부림임을 아는가

 

나뭇잎이 진다고

쓸쓸해 하거나 아쉬워 하지 말자

앙상한 가지 끝에서 그들이 밀어올릴

초록의 단단한 힘을 생각해 보아라

 

햇볕에 바래고,

서걱이며,

비바람에 찢기운

낙엽의 날개들이여

 

그 날개의 퇴색한 잎맥마다

이미, 푸르디푸른 새 눈이 자리잡고 있음을

눈 여겨 보아라

 

 

낙엽을 보며      /유안진

지난 날
내 몸에서
흘러간 피
흘러간 눈물을
거두어 담아

오늘 그대의
참혹한 순교의 죽음

대신 아파하고
대신 죽어가서
내가 살아 있고

또 이런 자리
이 쓸쓸한 웃음을
마련해 주었는가.

 

 

낙엽에게        /임영준

 

그래도
결코 서러워하거나
눈물비치지 않았으면

너는 나름대로
충실한 삶을 살아
모나지 않게 조용히 녹아들어
은총의 일익을 다하였으니
어리석고 무량한 계절에
어찌 못지않으리

너로 인해
지워졌던 사랑과 추억이
깨어나기도 했으니
어찌 미덥지 않으리

윤회의 고리를 놓지 않는
겸손하기 만한 한 가닥 영혼이여

 

 

낙엽 편지      /이정은

 

사랑을 안고 왔어요

설렘으로

소리 없이 왔네요

사랑 싣고

살포시 왔네요

 

솜사탕처럼

 

어느 틈엔가.

곱게 단장한 사랑은

내 마음에 한 컷의 추억 그려 담아내고

한 잎 두 잎 떨구네

 

마지막 가을 발길에

오색의 물결을 깔아 주는구나

 

낙엽 사랑은

그렇게 내딛는 발길에다

이별이라고 고하네

쓸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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