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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시

뉴우맨 2023. 2. 24. 09:28

 


💕 종 시 💕

                  소 머슴 / 뉴맨

잠들기 전의 여유
근심 걱정 내려놓고
펜을 잡고 하루를
되짚어 본다

마음 주고
사랑받으면서
행복하고 싶은 마음들을
일구어 엮어 본다

슬프게도
오늘 이 시가
흔적으로 남길 바라면서
힘주어 그려본다.

 


우리 앞에 남은 세월


푸른 잎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고 예쁜 꽃도 언젠가는 떨어지지요.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다시 오지 않습니다.

영웅호걸(英雄豪傑) 절세가인(絶世佳人)도 세월 따라 덧없이 가는데 우리에게 그 무엇이 안타깝고 미련이 남을까요.


누구나 그러하듯이 세월이 갈수록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남은 사람들마저 세상과 점점 격리되어 외로워집니다.

이별이 점점 많아져 가는 고적한 인생길에 서로서로 안부라도 전하며 마음 함께 하는 동행자로 인하여 쓸쓸하지 않은 나날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이 들어 외롭지 않은 행복한 삶을 사는데, 활력적이고 적극적 활동(活動)이 대안입니다.


세월 앞에 그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풍성(豊盛)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좋은 시간 보내 시기를….


아껴 쓰면 20년

대충 쓰면 10년

아 차 하면 5년

까딱하면 순간(瞬間)

우리 앞에 남은 세월입니다.


-좋은 글 중에서-

 

*> 개코도 모르면 가만히나 있지(숙종 편)<*

개코도 모르면 가만히나 있지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인즉슨. 숙종 대왕이 어느 날 미행 중 수원성 고개 아래쪽 냇가를 지나는 데 허름한 시골 총각이 관을 옆에 놓고 통곡하면서 물이 나오는 냇가에다가 묏자리를 파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가난하고 몰라도 유분수지 어찌 묘를 물이 나는 곳에 쓰려고 하는지 이상하다 생각을 하고 무슨 연고가 있지 싶어서 그 더벅머리 총각에게로 다가가 여보게 총각 여기 관은 누구의 것이지 라고 물었다.

제 어머님의 시신입니다.
그런데 개울은 왜 파는고? 하고 짐짓 알면서도 딴청을 하고 물으니 어머니 묘를 쓰려고 합니다. 미루어 짐작은 했지만, 숙종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보게 이렇게 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어찌 여기다 어머니 묘를 쓰려고 하는가? 라고 재차 다그쳐 물으니, 그 총각은 저도 영문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갈 처사라는 노인이 찾아와 절더러 불쌍타 하면서 저를 이리로 데리고 와 이 자리에 묘를 꼭 쓰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분은 유명한 지관인데, 저기 저 언덕 오막살이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라고 힘없이 대답하고는 옷소매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자신의 곤혹스러운 처지를 처음 보는 양반 나리에게 하소연하듯 늘어놓았다.

숙종이 가만히 듣자 하니 갈 처사라는 지관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궁리 끝에 지니고 다니던 지필묵을 꺼내어 몇 자 적었다. 여기 일은 내가 보고 있을 터이니깐 이 서찰을 수원부로 가져가게 수문장들이 성문을 가로막거든 이 서찰을 보여주게. 총각은 또 한 번 황당했다.

아침에는 어머님이 돌아가셨지, 유명한 지관이 냇가에 묘를 쓰라고 했지, 이번에는 웬 선비가 갑자기 나타나 수원부에 서찰을 전하라 하지. 도무지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추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총각은 급한 발걸음으로 수원부로 갔다.

서찰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명! 수원 부사는 이 사람에게 당장 쌀 삼백 가마를 하사하고, 좋은 터를 정해서 묘를 쓸 수 있도록 급히 조치하라. 수원부가 갑자기 발칵 뒤집혔다.

허름한 시골 총각에게 유명한 지관이 동행하질 않나, 창고의 쌀이 쏟아져 바리바리 실리지를 않나. 아! 상감마마, 그분이 상감마마였다니! 총각은 하늘이 노래졌다.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냇가에서 자기 어머니 시신을 지키고 서 있을 임금을 생각하니, 황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기쁨보다는 두려움과 놀라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한편 숙종은 총각이 수원부로 떠난 뒤 괘씸한 갈 처사라는 자를 단단히 혼을 내 주려고 총각이 가르쳐 준 대로 가파른 산마루를 향해 올라갔다. 단단히 벼르고 올라가 보니 산마루에 있는 찌그러져 가는 갈 처사의 단칸 초막은 그야말로 볼품이 없었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한참 뒤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게 뉘시오? 방문을 열며 시큰둥하게 손님을 맞는 주인은 영락없는 꼬질꼬질한 촌 노인네 행색이다. 콧구멍만 한 초라한 방이라 들어갈 자리도 없다.

숙종은 그대로 문밖에서 묻는다.
나는 한양 사는 선비인데 그대가 갈 처사 맞소?
그렇소만 무슨 연유로 예까지 나를 찾소? 오늘 아침 저 아래 상을 당한 총각더러 냇가에 묘를 쓰라 했소?

그렇소, 듣자니 당신이 자리를 좀 본다는데 물이 펑펑 솟아나는 냇가에 묘를 쓰라니 가당키나 한 일이요? 골탕을 먹이는 것도 유분수지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요? 숙종의 참았던 감정이 어느새 격해져 목소리가 커졌다.

갈씨 또한 촌노이지만 낯선 손님이 찾아와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비란 양반이 개 코도 모르면서 참견이야. 당신이 그 땅이 얼마나 좋은 명당 터인 줄 알기나 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통에 숙종은 기가 막혔다. (속으로 이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대왕 앞에서, 어디 잠시 두고 보자 하고 감정을 억누르며) 저기가 어떻게 명당이란 말이요? 모르면 가만히나 있지,

이 양반아 저기는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쌀 3백 가마를 받고 명당으로 들어가는 땅이야.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발복을 받는 자리인데, 물이 있으면 어떻고 불이 있으면 어때? 개코도 모르면 잠자코 나 있으시오!

숙종의 얼굴은 그만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갈 처사 말대로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총각은 쌀 3백 가마를 받았으며, 명당으로 옮겨 장사를 지낼 상황이 아닌가! 숙종은 갈 처사의 대갈일성에 얼마나 놀랐던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공손해졌다.

영감님이 그렇게 잘 알면 저 아래 고래 등 같은 집에서 떵떵거리고 살지 않고 왜 이런 산마루 오두막에서 산단 말이오? 이 양반이 아무것도 모르면 가만히나 있을 것이지 귀찮게 떠들기만 하네.

아니, 무슨 말씀인지. 숙종은 이제 주눅이 들어있었다. 저 아래 것들은 남을 속이고 도둑질이나 해 가지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 가져 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 그래도 여기는 바로 임금이 찾아올 자리여. 지금은 비록 초라하지만 나라님이 찾아올 명당이란 말일세. 숙종은 그만 정신을 잃을 뻔했다. 이런 신통한 사람을 일찍이 만나본 적이 없었다.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왕이 언제 찾아옵니까? 거, 꽤나 귀찮게 물어 오시네. 잠시 기다려 보오. 내가 재작년에 이 집을 지을 때에 날 받아 놓은 것이 있는데, 가만. 어디에 있더라. 하며 방 귀퉁이에 있는 보자기를 풀어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먼지를 털면서 들여다보더니….

그만 대경실색을 하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에 나가 큰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종이에 적힌 시간이 바로 지금 이 시각이었다. 임금을 알아본 것이다. 여보게. 갈 처사, 괜찮소이다.

대신 그 누구에게도 결코 말하지 마시오.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 묻힐 자리 하나 잡아주지 않겠소? 대왕님의 덕이 높으신데 제가 신하로서 자리 잡아 드리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어느 분의 하명이신데 거역하겠사옵니까?"

그리하여 갈 처사가 잡아준 숙종의 왕릉이 지금 서울의 서북쪽 서오릉에 자리한 명능이다. 그 후 숙종 대왕은 갈 처사에게 3천 냥을 하사하였으나, 노자로 30냥만 받아들고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이야기가 지금껏 전해오고 있다.

"신묘(神妙)하도다, 갈(葛) 처사(處士)여!
냇가에 묘를 쓰고 산마루 언덕에 초막을 지으니 음택(陰宅)명당 이 냇가에 있고, 양택(陽宅)명당 은 산마루에도 있구나.

임금을 호통치면서도 죄가 되지 않으니 풍수의 조화는 국법도 넘어가네.
볼품없는 초라한 몸이라도, 가난한 이웃에게 적선하고 나라님께 충성하노니, 그 이름 역사에 길이길이 남으리라.

왜 요즘은 갈 처사 같은 사람이 없나?
아 ᅳ 글쎄올시다?

-카톡으로 받은 글-


*^ 영혼을 감동시키는 이야기 ^*

한 청년이 길을 가다가 어느 노인과 마주쳤습니다.
청년은 혹시 자기를 기억하는지 물었죠.
그러나 노인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청년은 오래전 노인의 제자였고 노인 덕분에 지금은 교수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청년을 기억하지 못하는 노인은 그때 있었던 일이 궁금했습니다.

청년은 학창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시절 자기는 반 친구의 새 시계를 훔쳤고 시계를 잃어버린 학생은 선생님에게 시계를 찾아달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시계를 훔쳐 간 학생이 자진해 나와서 용서를 구하길 바랐지만, 누구도 자신을 도둑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모든 학생을 일어나게 하고 절대로 눈을 뜨지 말라고 당부한 후 직접 각 학생의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그렇게 하여 결국 시계를 찾았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시계를 찾았으니 이제 눈을 떠도 좋다."
"그날 선생님은 제가 도둑이라는 걸 친구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저의 자존심을 지켜주셨지요. 그때 선생님은 어떤 훈계도 하지 않으셨지만 저는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분명히 알 수 있었어요."

노인이 여전히 청년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자 청년은 노인에게 "이 사건을 기억하시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일은 물론 기억이 나네. 그날 모든 학생의 주머니를 뒤져서 없어진 시계를 찾았지. 하지만 난 자네를 기억하지 못하네. 왜냐하면 나도 그때 눈을 감고 주머니를 뒤졌거든….”

저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뭉클해진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으로 자신과 타인을 보호할 줄을 아셨던 선생님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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