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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범한 진실

뉴우맨 2022. 10. 7. 17:26

 

🌸 평범한 진실 🌸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고 생존한다는 것은 지뢰밭처럼 예측할 수도 없으며 위험성도 매우 큽니다.

정말 인생 80까지 살면 90점이고, 85세까지 살면 100점이라고 평소에 공언해 온 것이 타당함을 새삼 느낍니다.
오늘도 평범한 진실을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기적은 특별한게 아닙니다.
아무일 없이 하루를 보내면 그것이 기적입니다.

행운도 특별한게 아닙니다.
아픈데 없이 잘 살고 있다면 그것이 행운입니다.

행복도 특별한게 아닙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고 지내면 그것이 행복입니다.

오늘은 선물입니다.
하늘이 나에게 특별히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오늘은 내가 부활한 날입니다.
어제 밤에서 다시 깨어났습니다. 자다가 돌아가시는 경우를 생각하면 깨어난 것이 부활입니다.

오늘은 보너스로 받은 날입니다.
70세부터는 하루 하루가 특별히 받은 날, 보너스는 안주면 그뿐입니다.

오늘을 인생(人生)의 첫날처럼 또한 마지막 날처럼 살겠습니다.

"천국은 감사하는 사람만 가는 곳이다." 라고 마틴 루터 목사는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스트레스 받을 이유도 없고,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할 이유도 없으니, 오늘도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로 합니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며 살라 했습니다.
내가 아프면 다 필요 없습니다.
자신을 챙기면서 사세요.
내가 불행하면 인생도 없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찾으세요.

오늘도 당신의 멋진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단풍 너를 보니...

늙기가 얼마나 싫었으면
가슴을 태우다 태우다
이렇게도 붉게 멍이 들었는가


한창 푸르를 때는
늘 시퍼를 줄 알았는데

가을바람 소슬하니
하는 수 없이 너도
옷을 갈아 입는구나

붉은 옷 속 가슴에는
아직 푸른마음이
미련으로 머물고 있겠지


나도 너처럼
늘 청춘일줄 알았는데

나도 몰래 나를 데려간
세월이 야속하다 여겨지네

세월따라 가다보니
육신은 사위어 갔어도

아직도 내 가슴은
이팔청춘 붉은 단심인데

몸과 마음이 따로노니
주책이라 할지도 몰라

그래도
너나 나나 잘 익은 지금이
제일 멋지지 아니한가

이왕 울긋불긋
색동옷을 갈아 입었으니

온 산을 무대삼아
실컷 춤이라도 추려무나


신나게 추다보면
흰바위 푸른솔도
손뼉 치며 끼어 들겠지


기왕에 벌린 춤
미련 없이 너를 불사르고
온 천지를 붉게 활활
불 태워라

삭풍이 부는
겨울이 오기 전에....

🌾🍂🍮🌼🍰☕🍁

잘 사는 사람

세월은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니며
시간 속에 사는 우리가
가고 오고 변하는 것일 뿐이다

세월이 덧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덧없는 것이다

해가 바뀌면 어린 사람은
한 살 더 해지지만
나이든 사람은 한 살 줄어든다
되찾을 수 없는게 세월이니

시시한 일에
시간을 낭비 하지 말고
순간 순간을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한다

행복은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것이다

가진 만큼 행복한 것이 아니며
가난은 결코 미덕이 아니며
맑은 가난을 내세우는 것은
탐욕을 멀리하기 위해서이다

가진 것이 적든 많든
덕을 가지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가능하면 잘 살아야 한다

돈은 혼자 오지 않고
어두운 그림자를 데려 온다

재산은 인연으로 받은 것이니
내 것도 아니므로 고루
나눠 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가 부자가 되기보다는
잘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소유의 행복>中, 법정스님

🌾🍂🍮🌼🍰☕🍁

생활의여유 ㅡ차 한잔 마시며 뒤돌아보는 시간ㅡ 그리 모질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ᆢ 바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물처럼 흐르며 살아도 되는 것을ᆢ 악쓰고 소리 지르며 악착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 한마디 참고 물 한 모금 먼저 건네고, 잘난 것만 보지 말고 못난 것도 보듬으면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듯이ᆢ 서로 불쌍히 여기며 원망도 미워도 말고 용서하며 살 걸 그랬어ᆢ 세월의 흐름 속에 모든 것이 잠깐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ᆢ 흐르는 물은 늘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왜 나만 모르고 살아왔을까?.. 낙락장송은 말고 그저 잡목림 근처에 찔레나 되어 살아도 좋을 것을ᆢ 근처에 도랑물이 졸졸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감나무 한 그루가 되면 그만이었던 것을ᆢ 무엇을 얼마나 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둥바둥 살아왔는지 몰라ᆢ 사랑도 예쁘게 익어야 한다는 것을ᆢ 덜 익은 사랑은 쓰고 아프다는 것을ᆢ "예쁜 맘"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ᆢ 젊은 날에는 왜 몰랐나 몰라ᆢ 감나무의 "홍시"처럼 내가 내 안에서 무르도록 익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프더라도 겨울 감나무 가지 끝에 남아 있다가 마지막 지나는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이 순간처럼 새봄을 기다리는 예쁜 맘으로 살고 싶어라. 미움아! 배려야! 서로 이해하며 살아 보렴 건강이랑! 사랑이랑! 행복이랑! 기쁨이랑 다~같이 오늘은 무조건 무조건 행복이 주렁주렁 웃음꽃이 피어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스콜피온스 #홀리데이 https://youtu.be/bVW2OS84VLs

 

♡ "내가 가장 잘하는 말은 거짓말…....
"성직자의 투명한 고백이 찡했다 ^♡♡

김동길 / 단국대 석좌교수·연세대 명예교수

김수환이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것은 사실이지만 개천에서 자란 용은 아니다.

그는 뼈대 있는 집안의 후손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1868년 무진박해(戊辰迫害) 때 순교한 김보현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덟 명의 아이들을 고생하며 키워서 순교자의 후손답게 아들 둘을 천주교회 성직자로 만들었다.

김수환은 옹기장사를 하던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의 아호를 '옹기'라고 했다.

그러나 그 아버지조차 김수환이 대구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 별세했다.
그 많은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할 책임을 어머니 혼자서 걸머져야만 했다.

김수환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있는 동성상업학교(현 동성중·고교)에 진학했다.

어느 해 일왕 생일(천장절)인 4월 29일에 일왕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쓰라는 학교 당국의 지시가 있었지만, 김수환은 그런 글을 쓰지 않았다.
"나는 황국 신민이 아닙니다"라는 것이 당당한 이유였다.
동성상업학교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당시 교장이 장면(제2공화국 국무총리·1899~1966)이었는데 설득해도 듣지 않고 그는 끝까지 버티었다.

아마도 순교한 자신의 할아버지를 늘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럭저럭 동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김수환은 일본 동경에 있는 상지(上智)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학병으로 징집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아예 일본 육군 간부후보생에 지원해 훈련받던 중 조선인으로 일본인에 대해 불온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는 말이 있다.

해방 후 귀국한 그는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에 입학해 1950년 졸업하고 1951년에는 대구 계산성당에서 서품받고 성직자의 삶을 시작했다.

당시 다음과 같은 일화 한 토막이 있다.

김수환이 성신대학 학생일 때 부산 범일동에 있는 그의 형 김동환 신부가 시무하는 성당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 성당 유치원에 근무하던 어떤 젊은 보모로부터 뜻밖의 청혼을 받았다고 한다.

김수환이 미모 여성의 청혼을 받을 만큼 미남 청년이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제 눈에 안경'
이라는 말이 있으니 있을 법도 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가 어떻게 그런 유혹을 물리치고 평생 독신을 서약해야 하는 신부가 될 수 있었을까.

그 여성에게 'No'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여성이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최은희 같은 절세의 미인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인간의 판단은 자기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데 입장을 바꿔 볼 때 내가 그런 미인의 청혼을 받았다면 'No'라고 하지 못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가 가톨릭대학 노천강당에서 열렸던 '열린음악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미리 부탁을 해두었는지는 모르나 사회자가 추기경에게 노래를 한 곡 부탁했다.

그때 그는 '등대지기'를 불렀는데 청중이 추기경의 노래를 더 듣겠다고 뜨거운 박수를 보내자 추기경은 김수희의 '애모'를 불렀다.

사실 그 노래에는 성직자가 부르기에는 아슬아슬한 부분이 더러 있지 아니한가?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라는 말도 추기경 입에서 나오기는 어려운 말이고 특히 마지막에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여"
라는 가사도 어색하다.

그런데 그가 이 노래를 꼭 한마디만 바꾸어 부른 것도 추기경답다고 하겠다.

그는 "당신은 나의 남자여" 대신 "당신은 나의 친구여"라고 고쳐 불렀다.

김수환 아니고는 불가능한 특유의 재치였다고 생각된다.

이런 일화가 또 하나 있다. 추기경은 여러 나라의 말을 다 잘한다는 소문이 있어 기자들이 무슨 계제에 물었다고 한다.

"추기경님은 여러 나라 말을 다 잘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느 말을 가장 잘하십니까?"

추기경은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말? 내가 가장 잘하는 말은 거짓말이지."

그 말을 신문 지상에서 읽고 가슴이 찡했다.

역시 성직자다운 투명한 고백이었다.

김수환도 나도 부득이 독신으로 한평생을 살면서 이성의 유혹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유혹에 빠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겠는가!

그럴 때마다 독신자들이 할 수 있는 위선은 거짓말밖에 없는데 성직자인 그가 그런 고백을 했기 때문에 이 세상이 한결 흥미진진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그와 더불어 군부독재의 어려운 한 시대를 살면서 그가 한국 민주화에 이바지한 커다란 공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군사독재를 반대하는 젊은 학도들이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는데 경찰이 성당에 치고 들어가 농성에 가담한 자들을 모두 검거하겠다고 추기경에게 통보했다.

그는 단호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추기경인 나를 먼저 끌고 가고 그다음에 신부와 수녀들을 끌어가고 그 뒤에야 학생들을 끌어갈 수 있을 것이오."

경찰은 그 말을 듣고 끝내 쳐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군사정권이 잘못된 정권이고 유신헌법이 잘못된 헌법이고 유신체제가 잘못된 체제인 것을 명백히 밝히면서도 박정희의 공은 공대로 인정했다.

추기경 김수환은 말년에 오랜 투병 생활을 해야 했지만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맑은 두 눈에는 총명한 기운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웃으면서 육체의 아픔을 이겨냈다.

아직 살아 있는 우리를 위하여!

2009년 2월 어느 추운 날 그는 하늘나라로 조용히 떠났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남긴 한마디는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세요"였다.

그 유언 한마디가 천주교 신자뿐 아니라 개신교 신자도, 불교 신자도, 심지어 무신론자까지도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속인(俗人)들이 명동성당으로 모여들어 장사진을 이루었다. 5일간이나!

요단강 건너가 꼭 만나고 싶은 사람 김수환,
나라 사랑의 본보기 김수환,

주님의 충실한 종, go🌷

그의 이름은 "김수환"!


미국서 온 실버타운의 90대 노인부부

진리란 단순하다. 순간순간을 마치 선물 받은 아이처럼 기쁘게 사는 것이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 장면>

내가 묵는 실버타운 이층에는 일년 전부터 아흔 한살의 노인 부부가 살고 있다. 미국에서 오십년을 살다가 고국에서 죽고 싶어 돌아왔다고 한다.

부부는 수평선에서 붉게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이면 동해바닷가의 파크골프장 녹색 잔디밭에 나가 걷는다. 점심시간이 되면 공동식당에서 주는 나물 반찬이 많은 시골밥상을 맛있게 먹는다. 저녁 어둠이 내리면 노부부는 각자 책을 읽고 노래도 함께 한다. 아직도 시력이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 부부는 내가 쓴 소설과 수필집을 빌려 가 매일 몇 시간씩 다 읽었다고 했다. 고마운 독자이기도 하다.

실버타운의 온천탕에서 본 그 노인은 구십대인데도 아직도 허리가 꼿꼿하고 몸매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나는 그 노부부는 ‘무엇으로 사는지’ 알고 싶었다. 맑게 잘 살아온 노인은 그 자체가 진리 덩어리라는 생각이다. 높은 강대(講臺)에서 성경이나 서양신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성직자의 말은 어쩐지 패션모델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 안의 진리는 빛이 나는 인공보석같다고나 할까. 더러 부처를 배경으로 높은 단(壇)에서 주장자를 들고 알 듯 모를 듯 애매모호한 말을 하는 승려를 화면에서 보기도 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고매한 깨달음을 말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동화 ‘발가벗은 임금님’의 옷을 설명하는 직공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수준이 낮거나 인격이 뒤틀려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여하튼 나는 단 위에서 세상을 가르치려 하는 존재보다는 자신의 체험을 나누려고 하는 고백자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실버타운의 이층에 사는 얼굴이 맑은 구십대 노인의 삶을 얘기 듣고 싶었다. 어제 저녁 그 노부부를 나의 소형차에 모시고 북평시장 근처의 식당으로 가 돌솥밥을 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평소에는 말이 없는 부부였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편이었다. 부인이 내게는 마음이 조금 열렸는지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의 실버타운에 있다가 한국의 실버타운으로 왔어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미국에서는 ‘헬로우~’ 하면서 사무적으로 대하는 직원 사이에서 뭔가 주눅이 들어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직원들이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면서 어른 대접을 해주는 걸 보고 고향이 얼마나 좋은가를 실감했어요.”

옆에 있던 인생 백년을 바라보는 남편이 말했다.

“나이를 먹은 나에게는 이제 내일이 없어요. 오늘 이 시간뿐이에요. 인생의 밤이 오는 이 나이면 이제 쉬어도 하나님이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젊어서 일할 때는 바닷가 하늘이 별이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건지 몰랐어요. 잔디밭을 걸으면서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매일 바다 색깔이 바뀌는 걸 봐요. 정말 노년이 행복해요. 미국에서 오십년 생활보다 고국에 돌아와서의 일 년이 삶의 밀도가 더 농밀한 것 같아요.”

나는 노인에게서 살아 숨 쉬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진리를 배운다. 겸손한 마음으로 노인의 말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진리란 단순하다. 순간순간을 마치 선물 받은 아이처럼 기쁘게 사는 것이다. 바다 하얀 파도, 구름, 별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지구별에 와서 그런 것들을 감상해야 하는 것이다. 그 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어제밤 유튜브에서 강연을 들었는데 여러 단계의 천국을 말하고 있더라구요.”

그 부부는 이미 한발은 이승에 다른 한 발은 저 세상 쪽으로 딛고 있으면서 살피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인 노인이 말했다.

“자기가 죽어보지 않고 어떻게 천국을 말할 수 있을까? 자신도 모르는 걸 말하는 거잖아?”

노인의 말이 현실적이었다. 모르는 세계를 가본 듯 말하는 사람들이 탐탁치 않은 것 같았다. 부인이 또 이런 말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니까 차디찬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나라가 가난하고 힘들 때 미국으로 도망가서 잘 먹고 잘살다가 늙어서는 잘 차린 상에 숟가락을 슬쩍 올려놓듯이 복지 혜택을 공짜로 보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거예요.”

말은 조심스럽게 하지만 노부부는 내면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남편인 노인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경기고등학교를 다니다가 6.25 전쟁 때 학도병으로 끌려갔어요. 열 아홉 살이었죠. 바로 전투에 투입됐어요. 다행히 죽지 않고 현지에서 장교로 임관되어 전쟁이 끝날 무렵 육군 중위로 제대했어요. 원호처에서는 나를 전쟁영웅이라고 하면서 매년 미국으로 돈을 보내 줬어요. 이만하면 노년에 돌아와 살 자격이 있는 게 아닙니까?”

노인의 얼굴에는 이 사회의 냉대에 대한 섭섭함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노인의 다음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우리가 늙어서 한국에 덕을 보러 왔다고 하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내가 미국에 갈 때 한국에서는 오백불 이상은 가지고 갈 수 없었어요. 백불짜리 다섯장을 가지고 미국에 도착해서 온갖 노동을 하면서 그곳에서 돈 벌고 살았습니다. 그때 미국으로 간 교포들은 다 비슷해요. 그 사람들이 지금 노인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오는데 대개는 천만불 이상을 국내로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오백불을 가지고 떠나 천만불을 벌어 그 돈을 한국으로 가지고 와서 쓰겠다고 하면 애국자 아닌가요? 그런데 왜 미워하는 건가요?”

일부 사람들이 그 시대의 상황이나 그들의 입장을 모른 채 편견을 가지고 가볍게 말했을 것이다. 노부부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위로해 주었다. 6.25 전쟁은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전설같이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노인 부부는 살아있는 생생한 역사 자체였다. 또 삶의 진리를 담은 도서관이기도 했다. 나는 그 노인이 고백하는 체험을 받아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넣었다.

성경 속 빌라도는 ‘진리란 무엇인가?’라고 건성으로 물었다. 감옥의 낮은 옥지기는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진리가 무엇이냐’고 바울에게 절실하게 물었다. 진리는 그렇게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찾아도 될 것 같았다. 노인을 모시고 돌아오는 검은 해변에서는 파도 소리만 은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2022-10-02
엄상익 변호사



[오늘의 유머]

(땀) - 정자와 기자는 인간될
       확율이 3억분에1이라ᆢ -

한 외교관이 한국 언론의 왜곡 행태를 빗대어  문자 메시지로 보낸 유머를 소개합니다.....
씁쓸하군요.....


1. 예수가
"죄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발언한 것을
한국언론의 기사는
<예수, 매춘부 옹호 발언 파장. 잔인한 예수, 연약한 여인에게 돌 던지라고 사주.>
라고 보도했다


2. 예수가
위선적 바리새인들에게 분개 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꾸짖은 데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는
<예수, 국민들에게 X새끼 발언 파문>
라고 보도한다

3. 석가가 구도의 길을 떠나자,
한국 언론은
<국민의 고통 외면, 저 혼자만 살 길 찾아나서>
라고 보도하였다.


4. 석가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대해
한국언론에서는
<오만과 독선의 극치, 국민들 이 끝장 내야.>
라고 보도했다


5. 소크라데스가
"악법도 법이다."
라고 했을때 한국언론은
<소크라테스, 악법 옹호 파장>
이리고 보도했다


6. 시저가
"주사위는 던져졌다."
라고 하자 한국언론은
<시저, 평소 주사위 도박광으로 밝혀져.>
라고 보도했다


7. 이순신장군이
"내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라고 하자 한국언론은
<이순신, 부하에게 거짓말 하도록 지시, 도덕성 논란 일파만파>
라고 보도했다


8. 김구선생이
"나의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통일입니다."
라고하자 한국언론은
<김구, 통일에 눈이 멀어 민생과 경제 내팽개쳐.>
라고 보도했다


9. 클라크가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라고하자 한국언론은
<클라크, 소년들에게만 야망 가지라고, 심각한 성차별 발언>
라고 보도했다

10.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라고하자 한국언론은
<스피노자, 지구멸망 惡談, 全세계가 경악 분노>
라고 보도했다


11. 최영장군께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고 하자 한국언론은
<최영, 돌을 황금으로 속여 팔아 거액 챙긴 의혹>
이라고 보도했다

13. 링컨 대통령이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을 이야기하자 한국언론은
<국민을 볼모로 하는 국가 정책에 국민은 피곤하다.>
라고 보도한다


14. 니체가
"신은 죽었다."
라고 하자 .
한국언론은
<현정권, 신이 죽도록 방치,대통령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지금 대한민국 언론이 무슨짓을 하고 있는지 국민은 알아야합니다!

🍒* 삶은 너무 짧은
     여행(旅行)이다.


함께 여행(旅行)하는
짧은 시간(時間)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다툼과 무의미(無意味)
한 논쟁(論爭)으로
우리의 삶을
허비(虛費)하고 있는가?

너무나 짧은 여정(旅程) 인데도 서로를 용서(容恕) 하지 않고, 실수(失手) 를 들춰내고,
불평(不評)하며,
시간(時間)과 에너지 (energy)를 낭비(浪費) 하는가?

다음 정거장(停車場)에 내려야 할지도 모르는데.

작자미상(作者未詳)의 저자(著者)는 우리에게 충고(忠告)한다.

누군가가 당신(當身)의 마음에 상처(傷處)를 입혔는가?

진정(鎭靜)하라. 함께
하는 여행(旅行)이 짧다.

누가 당신(當身)을
비난(非難)하고, 속이고,
모욕(侮辱) 을 주었는가?

마음의 평화(平和)를
잃지 말라.

함께하는 여행(旅行)이
곧 끝날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當身)을 괴롭히는가 ?

기억(記憶)하라,
우리의 여행(旅行)이
너무 짧다는 것을.

이 여행(旅行)이 얼마나 길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들이 내릴 정거장
이 언제 다가올지 그들
자신 (自身)도 예측
(豫測) 할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인도(印度)의 힌디어(Hindi어(語)) 격언(格言)이 있다.

" 에크 딘 삽 코 자나 헤 "
(언젠가 우리는떠날것이다)

이 격언(格言)은
추상적(抽象的)인
은유(隱喩)가 아닌
인간(人間) 실존(實存)
의 핵심(核心)이다.

따라서 깊은 치유(治癒)
효과(效果)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必要)한 것은
완벽(完璧)함이나
불멸(不滅)이 아니라,

여행지(旅行地)에서
불편(不便)한 일을 겪을
때마다 내가 그렇게 하듯이
다음의 사실(事實)을
마음에 새기는 일이다.

" 나는 잠시(暫時) 이곳에
  여행(旅行) 온 것이다.

곧 여길 떠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瞬間),
불필요(不必要)한
감정(感情)이 사라지고
어떤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否定的)인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때로는 그렇게
간단(簡單) 하다.

끝이 없으리라는 것은
그저 우리의 끝없는
상상(想像)일 뿐이다.

장난감을 두고 늘 다투던
형(兄)이 백혈병(白血病)
에 걸리자 형(兄)이
동생(同生) 에게 한 말이
나의 마음을 울린다.

" 내 장난감은 모두
  네가 가져도 돼."

역설적 (逆說的)
이게도 삶의 기쁨은
나의 존재(存在)가
유한(有限)하다는
자각(自覺)에서
시작(始作)된다.

봄이면 아주 작은
풀꽃도 그것을 안다.

지저귐을 배우기
시작(始作) 한 어린
새도 아는 듯하다.

시들지 않는 꽃은 진한
향기(香氣)가 없다

살아서 기쁨을 느낄 수
없다면 죽어서 어떻게
느낄 수 있겠는가?

인생(人生)을 중요(重要)
하게 생각(生覺)한다면,

지상(地上)에 살아 있는
동안 언제나 감각(感覺)을
열어 놓되 사소(些少)한
일에 화를 내거나 마음이
무너질 필요(必要)는 없다.

우리가 함께 여행(旅行)하는
시간(時間)은
너무 짧기 때문이다.

당신(當身)과 나는
다음 정거장(停車場)
에서 내릴지도 모른다.


건강하시고
좋은날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