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의 좋은 시

6월의 시모음

뉴우맨 2021. 11. 27. 14:56

 

<6월에 관한 시 모음>

 

목필균의 시 '6월의 달력' 외

+ 6월의 달력

한 해 허리가 접힌다
계절의 반도 접힌다
중년의 반도 접힌다
마음도 굵게 접힌다

동행 길에도 접히는 마음이 있는 걸
헤어짐의 길목마다 피어나던 하얀 꽃
따가운 햇살이 등에 꽂힌다
(목필균·시인)


+ 6월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 하루해가 갑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
주저앉힐 수가 없습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 있곤 합니다

느닷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당신 생각이었음을 압니다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갑니다
(김용택·시인, 1948-)

 

 

+ 6월

6월은
녹색 분말을 뿌리며
하늘 날개를 타고 왔으니

맑은 아침
뜰 앞에 날아와 앉은
산새 한 마리
낭랑한 목소리
신록에 젖었다

허공으로 날개 치듯 뿜어 올리는 분수
풀잎에 맺힌 물방울에서도
6월의 하늘을 본다

신록은
꽃보다 아름다워라
마음에 하늘을 담고
푸름의 파도를 걷는다

창을 열면
6월은 액자 속의 그림이 되어
벽 저만한 위치에
바람 없이 걸려있다

지금은 이 하늘에
6월에 가져온 풍경화를
나는 이만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
(황금찬·시인, 1918-)


+ 6월엔 내가

숲 속에 나무들이
일제히 낯을 씻고
환호하는 6월

6월엔 내가
빨갛게 목타는
장미가 되고

끝없는 산향기에
흠뻑 취하는
뻐꾸기가 된다

생명을 향해
하얗게 쏟아버린
아카시아 꽃타래

6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

산기슭에 엎디어
찬 비 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6월

바람은 꽃향기의 길이고
꽃향기는 그리움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밤꽃이 저렇게 무시로 향기를 쏟는 날,
나는 숲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체취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기 때문입니다.

강물은 꽃잎의 길이고
꽃잎은 기다림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개구리가 저렇게
푸른 울음 우는 밤,
나는 들녘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말씀에
그만 정신이 황홀해졌기 때문입니다.

숲은 숲더러 길이라 하고
들은 들더러 길이라는데
눈먼 나는 아아,
어디로 가야 하나요.

녹음도 지치면 타오르는 불길인 것을,
숨막힐 듯, 숨막힐 듯 푸른 연기 헤치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강물은 강물로 흐르는데
바람은 바람으로 흐르는데...
(오세영·시인, 1942-)


+ 6월

바람 부는 날은 백양나무 숲으로 가면 청명한 날에도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귀를 막아도 들립니다
저무는 서쪽 하늘 걸음마다 주름살이 깊어가는
지천명 내 인생은 아직도 공사 중입니다
보행에 불편을 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오래 전부터 그대에게 엽서를 씁니다
서랍을 열어도 온 천지에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한평생 그리움은 불치병입니다
(이외수·소설가, 1946-)

 

+ 6월의 언덕

아카시아꽃 핀 6월의 하늘은
사뭇 곱기만 한데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고 안으로 안으로만 든다

이 인파 속에서 고독이
곧 얼음모양 꼿꼿이 얼어 들어옴은
어쩐 까닭이뇨

보리밭엔 양귀비꽃이 으스러지게 고운데
이른 아침부터 밤이 이슥토록
이야기해볼 사람은 없어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어가지고 안으로만 들다

장미가 말을 배우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사슴이 말을 안 하는 연유도 알아듣겠다
아카시아꽃 피는 6월의 언덕은
곱기만 한데 ....
(노천명·시인, 1912-1957)


+ 6월이 오면

6월이 오면
향기로운 풀섶에 그대와 함께 앉아 있으리
솔바람 부는 하늘에 흰 구름이 지어놓은
눈부신 궁전을 바라보리

그대 노래 부르고 난 노래를 짓고
온종일 달콤하게 지내리
풀섶 위 우리들의 보금자리에 누워
오, 인생은 즐거워라!
6월이 오면
(로버트 브리지스·영국 시인, 1844-1930)


+ 6월의 나무에게

나무여, 나는 안다
그대가 묵묵히 한곳에 머물러 있어도
쉬지 않고 먼 길을 걸어왔음을

고단한 계절을 건너 와서
산들거리는 바람에 이마의 땀을 씻고
이제 발등 아래서 쉴 수 있는
그대도 어엿한 그늘을 갖게 되었다
산도 제 모습을 갖추고
둥지 틀고 나뭇가지를 나는 새들이며
습윤한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맑고 깨끗한 물소리는
종일토록 등줄기를 타고 오르며
저녁이 와도 별빛 머물다가
이파리마다 이슬을 내려놓으니
한창으로 푸름을 지켜 낸 청명은
아침이 오면 햇살 기다려
깃을 펴고 마중 길에 든다

나무여, 푸른 6월의 나무여
(카프카)


+ 6월에는 스스로 잊도록 하자

시냇가에 앉아보자
될 수 있으면 너도밤나무 숲 가까이
앉아 보도록 하자

한 쪽 귀로는 여행길 떠나는
시냇물 소리에 귀기울이고
다른 쪽 귀로는 나무 우듬지의 잎사귀
살랑거리는 소리를 들어보자

그리고는 모든 걸 잊도록 해보자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 질투 탐욕 자만심
결국에는 우리 자신마저도 사랑과 죽음조차도

포도주의 첫 한 모금을 마시기 전에
사랑스런 여름 구름 시냇물 숲과 언덕을 돌아보며
우리들의 건강을 축복하며 건배하자
(안톤 슈나크·독일 시인, 1892-1973)


+ 유월의 산

산의 말없이
너른 품에 들어서서

유월의 푸른 이파리들이
총총히 엮어 드리운

그늘 진 오솔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

내 몸에도 흠뻑
파란 물이 든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옹졸해진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어느새 쪽빛 하늘이 되고

세상 근심은 솔솔
바람에 실려 아스라이 흩어진다
(정연복)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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