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호조참판(吏曹參判) 고유(高裕)와 정부인(貞夫人) 박씨(朴氏)

뉴우맨 2022. 10. 3. 21:53

호조참판(吏曹參判) 고유(高裕)와 정부인(貞夫人) 박씨(朴氏) 오늘은 밀양 古史 한편 올립니다. 조선(朝鮮) 숙종(肅宗) 때의 일이다. 아직 나이가 스물이 되지 않고 허름한 옷차림을 한 젊은 청년(靑年)이 경상도(慶尙道) 밀양(密陽) 땅에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高裕(고유)” 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義兵)을 일으켜 왜적(倭敵)을 물리친 “고경명(高敬命)”의 현손(玄孫)이었지만 부모(父母)를 어린 나이에 여의고, 친족(親族)들의 도움도 받지 못해 외롭게 떠돌고 있는 처지(處地)였다. 밀양(密陽) 땅에 이르러서는 생계(生計)를 위해서 남의 집 머슴을 살게 되었다. 비록 머슴살이를 살고 있고, 학문(學問)이 짧아서 무식(無識)했으나 사람됨이 신실(信實)하였고, 언변(言辯)에 신중(愼重)하였고, 인격(人格)이 고매(高邁)하였으므로 대하는 사람마다 그를 존중(尊重)하여 주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고도령(高道令)"이라고 불러 주었다. 그 마을에는 “박 좌수(朴座首)”라 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박 좌수(朴座首)”는 관청(官廳)을 돕는 아전(衙前)들의 우두머리였지만 박봉(薄俸)이었고 중년(中年)의 나이 상처(喪妻)를 한 후(後)에 가세(家勢)가 매우 구차(苟且)하였는데 효성(孝誠)스러운 딸 하나가 있어 정성(精誠)껏 아버님을 모셨으므로 가난한 가운데도 따뜻한 밥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고유(高裕)”는 그 마을에서 달을 넘기고 해를 보내는 가운데 어느덧 그 처녀(處女)의 효성(孝誠)과 현숙(賢淑)한 소문(所聞)을 듣게 되고 먼빛으로 보고 그 처녀(處女)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처녀(處女)에게 연모(戀慕)의 정(情)을 품게 되었다. “내 처지(處地)가 이러하거늘 그 처녀(處女)가 나를 생각해 줄까? 그 처녀(處女)와 일생(一生)을 더불어 산다면 참 행복(幸福)할 텐데! 벌써 많은 혼사(婚事)가 오간다고 하는데, 한 번 뜻이나 전해보자. 그래, 부딪혀 보자고!” 그러던 노을이 곱게 밀려드는 어느 날에 “고유(高裕)”는 하루의 일을 마치고 “박 좌수(朴座首)”의 집으로 찾아갔다. 본래 “박 좌수(朴座首)”는 장기(將棋)를 좋아하였으므로 장기판(將棋板) 부터 벌려 놓았다. 그런 다음에 실없는 말처럼 그러나 젊은 가슴을 진정(鎭靜)시키며 품었던 말을 꺼냈다. “ ‘좌수(座首)’ 어른 장기(將棋)를 그냥 두는 것보다는 무슨 내기를 하는 것이 어떨까요?” “자네가 그 웬 말인가? 듣던 중(中) 반갑구먼. 그래 무엇을 내기하려나?” 좌수(座首)는 이웃집에서 빚어 파는 막걸리나 파전을 내기라도 하자는 건가 생각하며 웃어넘겼다. “이왕(已往) 할 바에는 좀 큼직한 내기로 합시다. 이러면 어떨까요? 제가 지거든 좌수댁(座首宅)의 머슴살이 삼년(三年) 살기로 하고, 좌수(座首)님이 지거든 제가 좌수(座首)님 사위가 되기로요!” “박 좌수(朴座首)”는 그제야 “고유(高裕)”의 말이 뼈가 있는 말임을 알았다. “예끼 이 사람아! 금지옥엽(金枝玉葉) 같은 딸을 자네 같은 머슴꾼에게 주겠는가? 어찌 자네 따위나 주려고 빗발치는 청혼(請婚)을 물리치고 스무 해를 키웠다던가?” “고유(高裕)”는 “박 좌수(朴座首)”에게 무안(無顔)을 당하고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되돌아갔다. 그런데, “고유(高裕)”가 돌아간 뒤에 “박 좌수(朴座首)”와 '고유(高裕)'가 말다툼하는 것을 방(房)에서 듣게 된 딸이 물었다. “아버님께서 뭣 때문에 고도령(高道令)을 그렇게 나무라 셨습니까?” “그 군정(軍丁)이 글쎄 나더러 자기를 사위로 삼으라는 구나. 그래서 내가 무안(無顔)을 줘서 보냈다.” “박 좌수(朴座首)”는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하면서 딸의 고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버님, 그이가 어때서 그래요? 지금은 비록 빈천(貧賤)하나, 본래(本來)는 명문(名門) 사족(士族)이었고 또 사람이 듬직하고 그렇게 성실한걸요.” 오히려 “박 좌수(朴座首)”의 딸은 처녀(處女)의 수줍음 탓에 얼굴은 불그스레해졌지만, 얼굴 두 눈에 가득히 좌수(座首)를 원망(怨望)하고 있었다. 그러자 소문(所聞)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와서 좌수(座首)에게 혼인(婚姻)을 지내도록 하라고 권(勸)하여 마지않았다. 마치 자신들 집안의 일인 양 우겨대자 좌수(座首)도 반대(反對)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물 한 사발 떠 놓고 젊은 청년(靑年)과 처녀(處女)의 혼례(婚禮)가 이루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모은 돈으로 술동이를 받아 놓고 고기와 과일을 먹고 마시며 그들 한 쌍(雙)을 축복(祝福)해 주었다. 화촉동방(華燭洞房)의 밤은 깊어지고 “고유(高裕)“와 신부(新婦)는 촛불 아래서 부부(夫婦)의 연(緣)인 초야(初夜)를 치뤘다. ”고유(高裕)“는 가난하였으나 행복(幸福)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期待)뿐이었다. 그러나 색시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은 꿈같은 말이 아니었다. "서방님! 글을 아시나요?” “부끄러우나 배우지를 못하였소.” “글을 모르시면 어떡하시나요? 대장부(大丈夫)가 글을 알지 못하면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도 공명(功名)을 얻을 길이 없는 법(法)입니다.” 색시는 고유(高裕)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앞으로 십년(十年)을 작정(作定)해서 서로 이별(離別)하여 당신(當身)은 글을 배워서 과거(科擧)에 오르기로 하고 첩(妾)은 길쌈을 하여 세간을 모으도록 해요. 그렇게 한 뒤에도 우리들의 나이가 삼십(三十)이 되지 않으므로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닙니다. 우리 부부(夫婦)가 헤어지는 것은 쓰라리지만 훗날을 위해 고생(苦生)하기로 해요.” 색시는 “고유(高裕)”의 품에 안기어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 “고유(高裕)”의 두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그는 색시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긴 세월(歲月) 접어두었던 학문(學問)의 길을 깨우쳐 주는 색시가 어찌 그리도 사랑스러운지!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法)이다. 아직도 동이 트지 않은 새벽녘에“고유(高裕)”는 짧은 첫날밤이 새자 아내가 싸준 다섯 필 베를 짊어지고 입지출관향(立志出關鄕) 했다. 그는 그렇게 떠나서 어느 시장(市場)에서 베를 팔아 돈으로 바꾸고 스승을 찾았다. 돈을 아끼려고 남의 집 처마 밑에서도 자고, 빈 사당(祠堂) 아래서도 밤을 새워가면서 스승을 찾아 발길은 합천(陜川) 땅에 이르렀다. 고유(高裕)는 인품(人品)과 학문(學問)이 높아 보이는 듯 한 사람에게 예(禮)를 올리고 글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청(請)했다. 그리하여 그는 어린 학동(學童)들과 함께 천자문(千字文)을 처음 배웠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 시작(始作)했으나, 오륙 년(五六年)이 지난 후(後)에는 놀라움 속에서 “고유(高裕)”의 글은 실(實)로 대성(大成)의 경지(境地)에 도달했다. 스승도 탄복(歎服)하면서 칭찬(稱讚)을 하였다. “네 뜻이 강철(鋼鐵)처럼 굳더니 이제는 학문(學問)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였구나! 너의 글이 그만하면 족(足)히 과장(科場)에서 독보(獨步) 할만하다. 나로서는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올라가서 과거(科擧)나 보도록 하여라.” “고유(高裕)”는 그동안의 신세(身世)를 깊이 감사(感謝)하며 그곳을 물러나서는 해인사(海印寺)로 들어갔다. 그는 거기서 방(房) 한 칸을 빌린 다음 사정(事情)을 말하여 밥을 얻어먹으면서 상투를 매어 달고 다리를 찌르며 글을 익혔다. 어느 해, 드디어 기회(機會)가 찾아왔다. 숙종(肅宗) 대왕(大王)이 정시(庭試)를 보이라는 영(令)을 내렸다. 뜻은 헛되는 법(法)이 없었다. “고유(高裕)”는 처음 치루는 과거(科擧)에서 장원급제(壯元及第)하였다. 그 후(後)에 “고유(高裕)”는 조정(朝廷)에서 왕(王)을 모시게 되었다. 왕(王)을 가까이 모시던 어느 날, 소나기가 쏟아져서 처마에 그 소리가 요란(搖亂)하였기에 왕(王)은 대신(大臣)들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숙종(肅宗)은 혼자 말을 하였다. “신료(臣僚)들 소리가 빗방울 소리에 방해(妨害)되어 알아들을 수가 없구나.” 그것을 고유(高裕)는 초지(草紙)에 받아쓰기를, “처마에서 나는 빗방울의 소리가 귓가에 어지러우니 의당 상감께 아뢰는 말은 크게 아뢰는 말은 크게 높여라.” 하니 모두 글 잘한다고 칭찬(稱讚)하였다. 왕(王)은 쓴 글을 가져오라 하여 본 다음에 크게 기뻐하여 물었다. “너는 누구의 자손(子孫)이냐?” “신(臣)은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의 현손(玄孫)이옵니다.” “허! 충성(忠誠)된 제봉(霽峰)이 손자(孫子)도 잘 두었군. 그래 고향(故鄕) 부모(父母)께서는 강령(康寧)하시더냐?” “일찍 부모(父母)를 여의었습니다.” “그럼, 처자(妻子)가 있겠구나.” “예, 있사옵니다.” 그날 밤, 숙종(肅宗) 대왕(大王)은 “고유(高裕)”를 따로 불러서 그의 사연(事緣)을 사적(私的)으로 듣고 싶어 하셨다. “고유(高裕)”는 감히 기망(欺罔)할 수가 없어서 떠돌아다니다가 밀양(密陽) 어느 마을에서 머슴을 살게 된 이야기며, 거기서 장가를 들었고, 첫날밤에 아내와 약속(約束)을 하고 집을 떠나서 10년(年) 동안 공부(工夫)를 한 그의 이력(履歷)을 모두 아뢰었다. “허허! 그러면 10년(年) 한정(限定)이 다 되었으니 너의 아내도 알겠구나.” “모를 줄 믿사옵니다.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한 지가 며칠이 안 되어 아직 통지(通知)를 못 했습니다.” “음, 그래?” 왕(王)은 그 자리에서 이조판서(吏曹判書)를 불러들여 현(現) 밀양(密陽) 부사(府使)를 다른 고을로 옮기고 “고유(高裕)”로 밀양(密陽) 부사(府使)를 임명(任命)하라고 분부(分付)하였다. 그리고 다시 고유(高裕)를 바라보면서, “이제 내가 너를 밀양(密陽) 땅으로 보내니 옛날 살던 마을에 가서 아내를 만나되 과객(過客)처럼 차리고 가서 아내의 마음을 떠봐라. 과연 수절(守節)하며 기다리고 있는지,아니면 기다리지 못하고 변심(變心)했는지 그 뒷이야기가 나도 궁금하구나!” “고유(高裕)”는 부복(俯伏) 사은(謝恩)하고 물러 나왔다. 그는 왕(王)이 명(命) 한대로 하인(下人)들은 도중(途中)에 떼어놓고 홀몸으로 허술하게 차린 다음에 옛 마을을 찾았다. 그러나, 집터에는 잡초(雜草)만 무성(茂盛)할 뿐이었고 사람의 그림자도 없이 버려진 채로 수년(數年)의 세월(歲月)이 지난 것으로 보였다. “고유(高裕)”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못 믿을 것이 여심(女心)이라던가? 첫날 밤에 맺은 굳은 언약(言約)이 가슴속에 사무치건만.” 마침 가까이 소를 끌고 가는 노인(老人)을 보고 “박 좌수(朴座首)” 집 형편을 물으니 그가 '고유(高裕)'인 줄은 못 알아보고는 늙은이는 아는 대로 일러 주었다. “‘박 좌수(朴座首)‘ 어른이요? 그러니까 그것이 3년 전이었군요. 병으로 죽었지요. 그에겐 딸이 하나 있지요. 벌써 10년(年) 전(前)에 이 마을에서 머슴을 살았던 고도령(高道令)에게 시집을 갔는데 첫날밤에 신랑(新郞)이 자취를 감추어 버려 혼자 되었지만, 신기(神奇)하게도 첫날 초야(初夜)에 아들이 하나 생겼어요. 참 똑똑하지요. 그 여자는 현숙(賢淑)하고도 어찌나 부지런했던지, 남편(男便)이 없었는데도 크게 가산(家産)을 일으키더니 땅과 살림이 무수(無數)하고 건너편 산(山) 밑에 백여(百餘) 호(戶)가 넘는 대촌(大村)을 이루어 놓았어요.” “고유(高裕)”는 너무도 기뻤다. 가산(家産)을 이뤄놓은 사실(事實)이 아니라, 사랑의 언약(言約)을 지키면서 자신(自身)을 기다려줬다는 사실(事實) 때문에! '고유(高裕)'는 노인(老人)에게 사례(謝禮)하고 자신(自身)을 따르는 군속(軍屬)들에게는 주막(酒幕)에서 대기(待機)하도록 했다. 어둑어둑 어둠이 마을을 감싸올 무렵에, 마을 사람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제일 큰집의 대문(大門)을 열고 들어가서는 구걸(求乞)하는 소리를 질렀다. “얻어먹는 인생(人生)이 한그릇 밥을 바라고 왔소이다.” 사랑방에서 늙은 스승한테 글을 배우고 있던 소년(少年)이 그 소리를 듣고 나왔다. “들어 오세요, 손님!” "고유(高裕)"는 그가 아들인 줄 알면서도 짐짓 “아니 처마 밑에서라도 좋네.”라고 하였다. “아니, 올라오세요. 우리 집에서는 과객(過客)을 절대(絶對)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굳이 올라오라 하므로 못 이기는 척 올라가 윗목에 쭈그리고 앉았다. “저 그런데 손님의 성씨(姓氏)는 무엇이신지요?” “허, 비렁뱅이에게 무슨 성(姓)이 있나, 남들은 고(高)가라 하지만.”그러자 소년(少年)의 눈이 더욱 빛났다. “저, 그럼 손님 처가(妻家)의 성씨(姓氏)는요?” “10년(年) 전(前)에 장가들어 첫날밤을 지내자마자 헤어졌으니, 무슨 처가(妻家)랄 것이 있을까? 그 댁호(宅號)야 ’박 좌수댁(朴座首宅)‘이었지만...” 그때 박씨(朴氏) 부인(婦人)이 사랑(舍廊)에 과객(過客)이 들었는데 성(姓)이 고씨(高氏)라고 하는 바람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아들이 나왔다. 아들의 눈은 기쁨과 설렘으로 어머니의 눈빛을 확인(確認)을 한다. 박씨(朴氏) 부인(婦人)은 고개를 끄덕 이더니 아들 손을잡고 사랑방(舍廊房)으로 들어갔다. 비록 10년(年)을 떠나 살았지만 한눈에 알수있는 남편(男便)이라 기쁜 나머지 반가운 눈물을 흘렸다. 오래 그리던 회포(懷抱)에 쌓인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열살먹은 아들을 인사시켰다. “고유(高裕)”는 그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여전히 힘없는 소리로 그의 그간 지난 일을 꾸며댔다. “그렇게 집을 떠나서는 뜻을 이루어보려 하였으나, 운수(運數)가 사나워서 베를 판 돈은 도적(盜賊)을 만나 빼앗겨 버리고, 이리저리 유리걸식(遊離乞食)하여 다니자니 글을 배울 힘도 나지 않았거니와, 서당(書堂)이 있어 글을 배우려 해도 돈이 없으니 가르쳐 주려는 사람도 없었소. 세월(歲月)만 허비(虛費)하고는 글은 한자(字)도 배우지 못하고 이렇게 비렁뱅이가 되었소.” 그러나 부인(婦人)은 조금도 원망(怨望)하거나 민망(憫惘)해하는 빛이없이 사람의 궁달(窮達)은 모두 운수(運數)에 있다고 하면서 자기(自己)가 벼로도 수천석(數千石) 추수(秋收)를 장만해 놓았으니 우리에게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고 하였다. 그리고 좋은 의복(依伏)과 음식(飮食)을 들여 놓으면서 도리어 남편(男便)을 위로(慰勞)하여 주었다. “고유(高裕)”는 음식상(飮食床)을 앞에두고 부인(婦人)이 주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런데, 부인(婦人)의 눈길에 남편(男便)의 겉옷이 거렁뱅이의 옷 차림이지만 속옷은 새하얗고 깨끗하였으며 허리춤에는 관리(官吏)들이 차는 명패(命牌)가 흔들거리고 있었으니 놀랐다. “서방님! 사실(事實)대로 말씀 해주십시오.” “나와 동행(同行)하던 사람이 있으니, 그들도 불러들여 함께 먹어야 하겠소.” 부인(婦人)이 하인(下人)을 시켜 그 사람을 사랑방(舍廊房)으로 모셔 들이라 하였다. 하인(下人)이 나가서 문(門)밖에 서 있는 과객(過客)을 보고 들어가시자고 하자, 그는 들은척도 않고 대로(大路)에 나가더니 품에서 호적(號笛)을 꺼내어서 높이 불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십여명(數十餘名)의 관속(官屬)들이 달려와 안으로 들어가서는 도열(堵列)하였다. 그리고 박씨(朴氏) 부인(婦人)을 향(向)해 문안(問安) 인사(人事)를 올리는 등(等) 야단(惹端)이었다. 문(門)밖에 서있던 과객(過客)은 “고유(高裕)”의 지시(指示)를 받은 군관(軍官)이었다. “고유(高裕)”는 그제야 박씨(朴氏) 부인(婦人)에게 말했다. “우리 부부(夫婦)의 사연(事緣)을 들으신 상감마마께서 지시(指示)하신 것이라오. 당신(當身)의 마음을 떠보려고 한 것이 결코 고의(故意)가 아니었소.” 군속(軍屬)이 관복(官服)을 가져오니 갈아입고 박씨(朴氏) 부인(婦人) 앞에 당당(堂堂)하게 선 남편(男便)의 모습을 바라보는 부인(婦人)의 기쁨은 어떠하였으랴! 그 이튿날부터 3일간(日間) 크게 잔치를 베풀어 동리(洞里)의 남녀노소(男女老少)를 불러모아서 실컷 먹고 마시게 하였다. 박씨(朴氏) 부인(婦人)은 그동안 모아놓은 전답(田畓)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처음으로 글을 깨우쳐 주신 서당(書堂)의 스승과 해인사(海印寺) 스님들에게도 많은 보은(報恩)의 폐백(幣帛)을 보냈음은 물론이다. “고유(高裕)”는 얼마 안 있어 벼슬이 경상감사(慶尙監司)에 올랐다가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이르렀으니, 숙종(肅宗)과 영조(英祖), 正祖(정조) 등(等) 3대(代)를 모시면서 영화(榮華)로움이 말할 것도 없고, 박씨(朴氏) 부인(婦人)도 나라에서 지정(指定)한 “정부인(貞夫人)”이 되어 늦도록 복록(福祿)을 누렸다고 합니다. 고사(古史)가 감동(감동)이네요.요즈음 시대(時代)에도 이런 아내가 있겠죠?

'옛날 옛적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날 다방  (4) 2022.10.03
옛날에는 이랬다  (0) 2022.08.06
옛추억의 모습  (0) 2022.02.13
협객 시라소니  (0) 2022.01.30
흘러간 옛날  (0) 2022.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