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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셋👥

뉴우맨 2022. 9. 27. 16:26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백여든세번째야화◇

🕵아버지 셋👥

사화에 휩쓸려 정대감의 일가족이 몰살당할 때 열여섯 외동아들 정진벽은 부엌 아궁이 속으로 기어들어가 3일을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죽은 듯이 검댕 속에 파묻혀 있었다.

야음을 틈타 집을 빠져나온 진벽은 수표교 다리 밑 거지들 틈에 섞여 거지가 되었다.

의금부, 포도청 할 것 없이 진벽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천냥의 현상금이 붙어 장안에 방이 깔렸다.

거지떼들이 잔칫집의 남은 밥과 막걸리를 담아 술판을 벌인 자리에서 거지 하나가 진벽이를 보고 말했다. “학수야, 네가 정진벽이 아니냐? 방에 그려진 모습이 너하고 닮았어.” 학수는 진벽의 가짜 이름이다. 진벽이 웃으며 “내가 정진벽이 될 테니 포도청에 발고하여 천냥을 받아 반씩 가르자”며 농담으로 받아넘겼지만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거지세계에서 왕초는 절대권력자다. 왕초가 “학수야, 나 좀 보자.” 학수가 달려가 꿇어앉아 “부르셨습니까?” 대답하자 말없이 담배만 빨던 왕초가 사방을 두리번거려 단둘이만 있는 걸 확인하곤 “더이상 너는 이곳에 있을 수 없다. 사대문을 빠져나가는 게 문제야.” 학수가 “어르신, 무슨 말씀이신지요?”라고 묻자 왕초가 말없이 학수를 째려보며 말했다. “시끄러 인마!”  

수표교 다리 아래 거지가 죽으면 거적때기에 말아 지게에 지고 홍지문을 빠져나가 북한산 자락에 묻었다.

이튿날부터 학수가 열병을 앓기 시작하더니 3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왕초가 학수의 눈을 덮고 거적때기로 말며 썩은 돼지고기를 죽은 학수품에 넣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나절 힘센 거지가 학수의 시체를 지게에 지고 왕초를 따라 홍지문으로 갔다. 수문장이 거적때기를 펼치다가 악취에 코를 막고 돌아섰다.

무사히 홍지문을 빠져나가자 개울가 숲 속에서 거적때기를 펼치고 학수가 일어났다. 개울에서 몸을 씻은 진벽은 왕초에게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아버님 꼭 살아서 돌아오겠습니다.” 어둠 속에 왕초는 홍지문 안으로 들어가고 진벽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챗거리장터는 장꾼들로 시끌벅적했다. 헝클어진 머리를 새끼줄로 동여맨 젊은 엿장수가 가위를 두드리며 “울릉도 호박엿, 깨엿이요, 갱엿~” 목청을 뽑으며 장꾼들 틈을 돌아다녔다.

“깨엿 하나 주시오.” 가마니를 깔고 앉은 관상쟁이가 불렀다.

엿장수가 둘러맨 엿판을 내려놓고 기운 빠진 다리를 쉴 겸 관상쟁이 가마니때기 끝자락에 궁둥이를 붙였다.

“좋은 세상이 곧 돌아올 것이오. 몸과 마음을 잘 지키시오.” 관상쟁이가 엿장수에게 조용히 말하자 엿장수는 역정을 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는 게요.”

“소피 좀 보고 오리다. 엿판 잘 지켜주시오.” 

그 길로 엿장수 진벽이는 엿판 찾을 생각도 잊은 채 삼십육계를 놓았다. 며칠 후, 진벽은 이 지역을 떠나기로 하고 단봇짐 하나 둘러매고 안동나루터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소갈병에 걸리게 생겼네. 엿 한판을 다 먹어서.”

진벽이 뒤돌아보니 챗거리 관상쟁이가 빙긋이 웃고 있었다. 깜짝 놀랐지만 도망가지는 않았다. 때마침 나룻배가 닿아 진벽이도 배에 오르려는데 관상쟁이가 진벽의 옷자락을 잡았다.

“이 배를 타지 마시오.” 

뱃사공이 “안 탈 것이요?” 묻자 “식구를 기다려 다음 배를 타겠소”라고 관상쟁이가 소리쳐 배는 떠나고 나루터엔 두 사람만 남았다. 

“왜 나를 발고하지 않았습니까?” 진벽이 묻자 껄껄 웃으며 관상쟁이가 말했다. “귀를 막으시오.”

꽈르르 꽝― 천지를 찢는 벼락이 강 한복판의 배를 때렸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자 관상쟁이가 말했다. “천하에 몹쓸 인간 셋이 저 배에 탔소. 하늘이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세월이 흘렀고 세상은 바뀌었다.

평양감사가 된 진벽이 두 노인을 앉혀놓고 큰절을 올리며 “소인에게는 아버님이 세 분 계십니다.

지금은 저승에 계신 저를 낳으신 아버님,
그리고 두 분은 저를 살리신 아버님 입니다.”하면  수표교 다리 아래 왕초와 관상쟁이는 감사의 절을 받으며 안절부절 못했지만 진벽이 출중한 인물이란걸 진즉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한다.          

     ㅡ끝ㅡ

"농신에서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