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모음

8월의 시모음

뉴우맨 2022. 8. 29. 06:14





8월의 시모음


8월 소묘

(박종영·공무원 시인)



8월이 춤을 춘다.

세상 나무들이

푸른 물감으로 꽉 차서

오지게 좋다.



지상으로부터 먼 하늘 구름

아랑곳없이

우리

모두의 타향으로 흘러간다.






팔월 · 2

(김용원·시인, 1946-)



사촌보다 더 가까운

잡풀 더미 속에서

풀벌레가 운다.



태엽 풀린

괘종시계의 시각 알리는 소리



천렵 가자던 박서방은

배꼽을 하늘에 두고

오수를 즐기고



때 이르게

나온 고추잠자리

날쌘 제비에게 덜미를 잡힌다.



펄펄 끊는

팔월의 정적






그해, 팔월

(하영·시인, 1946-)



뜨거운 황토밭에서

팥알, 녹두알이

타악 탁

불꽃의 껍질을 깨고

스스로 쳐놓은 울타리를

뛰어넘고 있었다.



꼬이고 뒤틀린 사슬을

뜨겁게 담금질하여

시퍼런 바닷물에 내던지고 있었다.






팔월

(박인걸·목사 시인)



해마다 팔월이면

태양이 가깝게 다가와

숲은 가마솥이 되고

대지는 화덕이다.



풀벌레는 자지러지고

새들은 그늘로 숨지만

바람의 풀무질이

열기를 불어넣을 때면

푸른 생명들은

조용히 찬가를 부른다.



우주의 에너지가

구석구석 파고들 때면

잎사귀마다 춤을 추며

여름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대추가 소리 없이 여물고

고구마도 큰 꿈을 키워가는

팔월에는 너와 나의 사랑도

여물어 가려나




팔월

(공성진·시인, 1960-)



실성하여 미쳐 버린 듯

훠이훠이 훠어이

오장육부 삶아내는 불춤을 춘다.



열풍은 얄궂게 박자를 맞추고

숨통을 조이는 절정의 격렬한 춤사위



넋빠진 무의식에 뺨을 갈기는

간간이 오뚝이처럼

정신 차려 벌떡 일어나 보지만



고갈된 체액에 혼미하여 비틀거리다

털버덕 엎어져 녹아내리는 길바닥에

그리움조차 밀어내려고 얼굴을 뭉갠 채



망각하여라.

망각하여라.

점점 사그라지는 열정에 분노하는

터무니

없이 무기력한 팔월




8월이 가기 전에

(오광수·시인, 1953-)



8월이 다 가기 전에

조금 남아있는 젖은 가슴으로

따가운 후회를 해야겠다.



삶에 미련이 많은 만큼

당당하지를 못해서

지나온 길 부끄러움으로

온갖 멍이 들어 있는데도

어찌하지 못하고 또 달을 넘겨야 하느냐?



나의 나약함이여,

나의 비굴함이여,

염천 더위에 널브러진 초라한 변명이여,

등에 붙은 세 치 혀는 또 물 한 바가지를 구걸하고

소리 없는 고함은 허공에서 회색 웅덩이를 만드는 데

땅을 밟았다는 두 발은

흐르는 물에 밀려 길을 잃고 있구나.



8월이 간다

이 8월이 다 가기 전에

빈손이지만 솔직하게 펼쳐놓고

다가올 새날에는 지친 그늘에게 물 부어주고

허공의 회색 웅덩이는 기도로 불러다 메워가고

물빛에 흔들리는 눈빛이라면 발걸음을 멈추자.



머지않아 젖어있는 이 가슴이 마른다 해도

잠든 아이 콧잔등에 땀 솟을까

애쓴 마음이라도 남아있으면 너무 고맙지 않은가!






8월의 사랑 노래

(정연복·시인, 1957-)



작렬하는

8월의 햇살 아래



거추장스러운 것들

훌훌 벗어버리고



거리낌 없이

맨살 맨몸을 드러내듯.



불같은 사랑

나를 찾아오면



부끄러워 감출 것 없이

머뭇거림 없이



온몸 온 가슴 까발리고

뜨겁게 사랑하리.






여름 숲 /권옥희



언제나 축축이 젖은

여름 숲은

싱싱한 자궁이다.



오늘도 그 숲에

새 한 마리 놀다 간다.



오르가슴으로 흔들리는 나뭇가지마다

뚝뚝 떨어지는

푸른 물!






소나기 명언 / 황순원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 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이번은 소년이 뒤따라 달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소녀보다 더 많은 꽃을 꺾었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쁠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

근데 이 양산같이 생긴 노란 꽃은 머지?

마타리 꽃 돌다리 건너에서 소녀를 보며

건너오지 못하는 소년에게...

조약돌을 던지며...." 바보~!! "


"넌 왜 그렇게 용기가 없니?

좋아한다고 말하라는 거 아니잖아.

그냥 인사도 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왜 말도 못 하고..

일부러 길 막고 있는 것도

알면서 바보처럼 그렇게 보고만 있을 거니?



"왜 빗소리가 이렇듯 좋을까?

그건 비가 주는 감수성에서 사춘기를 보낸 영향이 아닐까요.

장례인들의 말속에서 소년과 소녀의

영원한 이별은 사실화됩니다.

그런데 참 이번 계집애는 여간 잔망스럽지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어느 가을날 한 줄기 소나기처럼

너무나 짧게 끝나버린 소년과 소녀의

안타깝고도 순수한 사랑을 그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53년 영국에서 번역되어 신문에 연재된 적도 있는데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꽤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굴 비 /오탁번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 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 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둘러보았다.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 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 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빡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초여름 /허형만



물 냄새

비가 오려나 보다.



나뭇잎 쏠리는 그림자

바람결 따라 흔들리고



애기똥풀에 코를 박은

모시나비



지상은

지금 그리움으로 자욱하다.






여름 일기 /이해인 여름엔



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

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영혼의 속까지 태울 듯한 태양 아래

나를 빨아 널고 싶다.



여름엔 햇볕에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향기로운 매일을 가꾸며

향기로운 땀을 흘리고 싶다.



땀방울 마저도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뜨겁게 살고 싶다.



여름엔 꼭 한 번 바다에 가고 싶다.

바다에 가서

오랜 세월 파도에 시달려 온

섬 이야기를 듣고 싶다.



침묵으로 엎디어

기도하는 그에게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 오고 싶다.






혹서 일기 /박재삼



잎 하나 까딱 않는

30 몇 도의 날씨 속

그늘에 앉았어도

소나기가 그리운데



막혔던 소식을 뚫듯

매미 울음 한창이다.

계곡에 발 담그고

한가로운 부채질로

성화같은 더위에

달래는 것이 전부다.



예닐곱 적 아이처럼

물장구를 못 치네.

늙기엔 아직도 멀어

청춘이 만 리인데



이제 갈 길은

막상 얼마 안 남고

그 바쁜 조바심 속에

절벽만을 두드린다.




여름밤 /문인수·



저인망의 어둠이 온다.

더 많이 군데군데 별 돋으면서



가뭄 타는 들녘

콩 싹 터져 오르는 소리 난다.



가마솥 가득 푹 삶긴 더위

솥검정 같은 이 더위를

반짝반짝 먹고 있다.



보리밥에 장아찌 씹듯

저 별들이 먹고 있다,






그늘 만들기 /홍소희



8월의 땡볕 아래에 서면

내가 가진 그늘이 너무 작았네

손바닥 하나로 하늘 가리고

애써 이글대는 태양을 보면



홀로 선 내 그림자 너무 작았네

벗이여, 이리 오세요

홀로 선 채 이 세상 슬픔이 지워지나요



나뭇잎과 나뭇잎이 손잡고

한여름 감미로운 그늘을 만들어 가듯

우리도 손깍지를 끼워봅시다.



나 근심이 나의 근심이 되고

네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때로

벗이여, 우리도 서로의

그늘 아래 쉬어 갑시다.

[출처] 8월의 시 모음|작성자 희망의 속삭임

美 /박용하



삶이

한 번뿐이 듯

죽음도 한 번뿐이다.



단 한 번 태어난

죽음 - 기릴 일이다.



연못에서는

잉어가 수면을 깨며

날개를 젓는다.



여름이 가고 있다.




그 여름의 끝 /이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여름 능소화 /정끝별



꽃의 눈이 감기는 것과

꽃의 손이 덩굴지는 것과

꽃의 입이 다급히 열리는 것과

꽃의 허리가 한껏 휘어지는 것이



벼랑이 벼랑 끝에 발을 묻듯

허공이 허공의 가슴에 달라붙듯

벼랑에서 벼랑을

허공에서 허공을 돌파하며



홍수가 휩쓸고 간 뒤에도

붉은 목젖을 돋우며

더운 살꽃을 피워내며

오뉴월 불 든 사랑을

저리 천연스레 완성하고 있다니!



꽃의 살갗이 바람 드는 것과

꽃의 마음이 붉게 멍드는 것과

꽃의 목울대에 비린내가 차오르는 것과

꽃의 온몸이 저리 환히 당겨지는 것까지






여름 낙조 /송수권



왜 채석 강변에 사는지 묻지 말아라.

나는 지금 만 권의 책을 쌓아 놓고 글을 읽는다.

만 권의 책, 파도가 와서 핥고 핥는 절벽의 단애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나의 전 재산을 다 털어도 사지 못할 만 권의 책

오늘은 내가 쓴 초라한 저서 몇 권을 불지르고

이 한바다에 재를 날린다.



켜켜이 쌓은 책 속에 무일푼 좀처럼

세 들어 산다

왜 채석 강변에 사느냐 묻지 말아라.



고통에 찬 나의 신음 하늘에 닿았다 한들

끼룩끼룩 울며 서해를 나는

저 변산 갈매기 만 큼이야 하겠느냐

물 썬 다음 저 뻘밭에 피는 물 잎새들 만 큼이야

자욱하겠느냐



그대여, 서해에 와서 지는 낙조를 보고

울기 전에

왜 나 채석 강변에 사는지 묻지 말아라.






당신의 여름을 사랑합니다 /이채



겨울은 덥지 않아서 좋고

여름은 춥지 않아서 좋다는

넉넉한 당신의 마음은

뿌리 깊은 느티나무를 닮았습니다.



더위를 이기는 열매처럼

추위를 이기는 꽃씨처럼

꿋꿋한 당신의 모습은

곧고 정직한 소나무를 닮았습니다.



그런 당신의 그늘이 편해서

나는 지친 날개 펴고

당신 곁에 머물고 싶은

가슴이 작은 한 마리 여름새랍니다.



종일 당신의 나뭇가지에 앉아

기쁨의 목소리로

행복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당신은 어느 하늘의 천사인가요



나뭇잎 사이로 파란 열매가

여름 햇살에 익어가고 있을 때

이 계절의 무더위도 신의 축복이라며

감사히 견디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여름바다 / 김덕성



팔월 초순

불가마 속 같은 찜통더위에 밀려

달려와 가슴을 헤치니



글쎄 느닷없이

하얀 거품을 물고

사자처럼 달려와

반갑게 포옹하며 물세례를 주는 파도



숨을 돌리려 하면

다시 밀려와 반복하는 바다

이제 몸 열기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여름 바다가

이렇게 좋은 걸...






여름밤 /이준관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여름밤은 뜬눈으로 지새우자.



아들아, 내가 이야기를 하마.

무릎 사이에 얼굴을 꼭 끼고 가까이 오라.

하늘의 저 많은 별들이

우리들을 그냥 잠들도록 놓아주지 않는구나.



나뭇잎에 진 한낮의 태양이

회중전등을 켜고 우리들의 추억을

깜짝깜짝 깨워놓는구나.



아들아, 세상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많은

너는 밤새 물어라.

저 별들이 아름다운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 열 손가락에 달을 달아주마.

달이 시들면

손가락을 펴서 하늘가에 달을 뿌려라.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짧은 여름밤이 다 가기 전에

(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뜬눈으로

눈이 빨개지도록 아름다움을 보자.






개똥벌레 / 평보



구봉산 작은 폭포 옆에

달은 밝다 못해 눈이 부시다.

반디 불이다! 저 기저귀 좀 봐

빛을 발산하며 곡선으로 추상화를 놓는다.

암울한 세상을 희망으로 하 잔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점 장이 한 잔 대로 하였으면

세상을 밝게나 하거라.

어둠과 빛을 가르면

불쌍한 것 너 아니고 민초들이라.



옛사람 풍류로 시조하던 침류 댄(枕流臺)

반딧불이 춤을 춘다. 세월 좋다.

노래하고 춤을 춘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세상은 깜깜한데 스스로 빛을 난들

등불이 되겠느냐?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희망을 주고 가거라.








억압 / 평보



꿀벌 한 마리 호박꽃 진한 꿀 빨고 있었지

장난스레 꽃잎 오므려 가두어 버렸어

녀석은 호박 꽃에 감금당했지.



약하다고 깔보는 것이냐

조그만 녀석은 날 벼르고 있었지

곧 석방 시키려 준비 중이었는데



호랑나비. 흑이 나비가 나리꽃에 앉아

날 좀 보라고 유혹한 거야

황홀해서 시선 돌리니 녀석은

어느새 탈출하여 내 콧등에 침 꽂았어.



나는 할 일 없는 장난이었지

억압된 녀석은 죽을 맛이었을 테고

죽음으로 압제자를 징벌 한 것이라.



네 내 콧등 아픔으로

녀석의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더군

자유의 속박은 언제나 큰 저항이 있고 나!

허리 구부리고 날개 떠는 녀석 보며

나는 연민하지만

녀석은 나를 노려보며 경멸하더군.

[출처] 8월의 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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